예술고등학교를 다니던 수지 큐는 부모를 따라 고등학교 1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춘기 소녀에게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코쟁이랑은 절대 얘기 안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물론 안하는 게 아니라 못 했지만요”
그녀는 캐나다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뉴욕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힘을 얻었다. 아버지는 그녀가 작품 때문에 힘들어 할 때마다 캐나다 밴쿠버와 뉴욕을 오가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해 주는 좋은 멘토였다. 아버지는 일부러 그녀가 맘에 들어 할 예쁜 열쇠꾸러미를 책상에 올려두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녀는 열쇠꾸러미를 통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뉴욕에서 대학원을 마친 그녀는 일본의 앤디워홀로 불리는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그녀는 처음 작업장을 찾았을 때 받은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무라카미라는 거장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죠. 직원 20여 명 모두가 무라카미 한 사람의 작품을 위해 일하고 있는 모습도 신기했고요. 돈을 안 받더라도 여기서 일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무라카미 다카시’ 스튜디오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팀장자리에 오르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싶었던 그녀가 무라카미 밑에서 2년 동안 일한 것도 사실은 무척 긴 기간이었다. 회사에선 당연히 그녀를 잡았지만 그녀의 결정은 단호했다.
일을 그만두자마자 그녀는 다시 물감을 던졌다. 바닥에 캔버스 10장을 깔고 물감을 잔뜩 섞어 무조건 부었다. 딱히 어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무작정 물감을 부으며 자신이 원하는 느낌을 찾아갔다. “한 가지 물감을 흘리고 다른 물감을 흘렸을 때 중간에 서로 만나 마블링처럼 섞이는 느낌이 좋아요. 몇 시간 지나고 마르고 보면 각도에 따라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하죠”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덕분에 지난해엔 전시회를 5번이나 열었다. 뉴욕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로 인정받은 그녀의 작은 소망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꼭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아기 낳고 그때까지 몸이 회복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가능할 거에요. 그 때 꼭 오세요”
인터뷰를 할 당시 그녀는 만삭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아기를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고 최대한 정성들여 만들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틀 뒤 훨씬 고귀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엄마가 된 그녀의 작품이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