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의 작가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저서〈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는 ‘공감’을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한다.

물질적 합리성에 기초한 경제와 정치시스템은 에너지 고갈과 환경 파괴로 세계적 위기를 초래했고, 이제 우리 사회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지구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공감적 감수성(empathic sensibility)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감’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느끼며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를 통해 타인과 친밀한 연대와 우정을 쌓아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계몽주의 철학의 오랜 전통은 ‘실용주의적 합리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해 왔다. 자기중심적 인간은 협력보다 경쟁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는데, 특히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셈 되지 않는 경우에는 협력보다 ‘무임승차(free ride)’가 현명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리프킨은 이러한 경쟁과 배타적 소유 시스템이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며, 더 이상 인류 문명의 지배적 원리가 될 수 없다고 설파한다. 인간에게는 소위 공감신경세포(empathy neurons)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호혜성을 전제로 한 사회적 행동, 즉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본성의 요체라는 설명이다. 1990년대 이후새롭게 조명된 ‘사회자본(social capital)’개념 역시 인간 사이의 ‘촘촘한 관계’와 ‘신뢰’가 창출해 낼 수 있는 놀라운 생산성을 부각해 왔다. 탄탄한 사회적 관계를 통한 호혜적 연대가 공동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공감의 에너지가 개인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청년 유니온’이라는 단체가 존재한다. 15세에서 39세 사이의 비정규직, 정규직, 구직자, 일시적 실업자 등 다양한 청년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일할 권리’를 확보하고자 만들어진 조직이다. ‘세대별 노조’라는 새로운 개념을 던지며 2010년에 결성되었지만 여전히 법외 노조에 머물러 있다.

신자유주의의 전 세계적 흐름은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사회구조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시켰고, ‘백수’와 ‘임시직’ 사이를 오가는 많은 청년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청년유니온은 2, 30대를 짓누르는 고용의 불안정성과 경제적 박탈이 ‘개인의 스펙 쌓기’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합법적 지위 획득은 벌써 네 번째 좌절되었지만, 그들은 ‘함께 할 수 없을 듯한’ 사람들 간의 ‘연대의 방식’을 보여 주었다. 이들이 어떤 성공을 거둘 지는 미지수이지만, 최소한 ‘개인의 행
복을 함께 추구하는’ 소셜 디자인(socialdesign)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의미는 남을 것이다.

최근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중문화의 코드로 각광 받고 있지만, 적자생존만이 아름다운 성공 스토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방, 참여, 공유의 정신 위에 세워진 가상공간에서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만끽하고 있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경쟁의 코드’가 아닌 ‘공감의 코드’로 더 감동적인 행복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거액의 등록금 대출로 20대의 첫 언덕을 넘은 선후배와 친구들, 시급 5180원 확보를 외치고 있는 미화 노동자들, 그리고 엄청난 자연재해 한 가운데 서 있는 일본 시민들에이르기까지, ‘공감의 촉수’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뻗어나갈 수 있다. 봄이 시작되는 이 캠퍼스에 놀이를 통해, 광장을 통해, 그리고 학문을 통해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의 시대가 활짝 열리길 기대해 본다.

민영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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