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입니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수도 설레임과 기대로 방학을 맞이하였고 보내는 중입니다. 학교(school)라는 단어가 삶을 즐긴다는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에서 유래한 것처럼 본질에 충실했다면 방학이 그렇게 간절할까요? 학기중에 했던 공부가 삶을 즐기는 방법과 실천에 관한 것이었다면 방학이 그토록 기다려질까요?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방학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개학이 늦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왜 일까요.

방학이 되면 학생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점수스펙과 경력스펙을 쌓기에 박차를 가합니다. 학기중 학점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토플과 토익 점수를 따기 위해 학원도 다녀야 하며, 이력서 한 줄을 더 채우기 위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인턴 경력을 쌓으려 혈안이 됩니다. 경쟁력 있는 취업준비생이 되고자 젊음도 사랑도 잊은 학생들이 많습니다. 무전여행과 봉사활동도 스펙생산의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보는 안목,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그리고 패기와 도전정신은 스펙 쌓기에 밀려났습니다.

한편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잡 이상의 일을 하면서 방학을 보내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방학은 생존을 위한 노동의 기간이며, 대한민국에서 돈 없는 대학생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처절하게 체험하는 기간입니다. 이들에게 점수와 경력의 스펙 쌓기는 언감생심입니다. 이렇듯 대학생도 계층화되었습니다. 학점 스트레스에 시달려 자살하는 대학생, 등록금과 생활비에 시달려 자살한 대학생들에게 대학은 무엇일까요.

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스펙지상주의자들이 스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선, 그들은 외부로 들어나는 스펙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들은 스펙을 보다 나은 학점, 자격증, 경력, 건강 등과 같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준으로만 여깁니다. 둘째, 그들은 스펙이 나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스펙의 어원이 제품의 명세서와 설계서라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스펙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스펙의 목적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왜 스펙이 필요한가에 대한 진정어린 고민이 부재합니다. 스펙은 자기성찰과 실천의 과정이며 결과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스펙입니다. 스펙은 외적 기준으로 ‘주어지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내적 기준으로 자신이 ‘만들어가는’ 이미지 즉, 정체성과 관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 주체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사회는 지상주의(至上主義) 이데올로기에 붙박여 있습니다. 지상주의는 1등주의와 통합니다. 무엇을 최고로 여기거나, 최고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운동으로 말하면, 메달지상주의가 되겠지요. 메달의 색깔도 중요합니다. 금색만을 추구합니다. 은과 동은 배경색이 되는 것입니다. 1등만 존재합니다. 한편 지상주의는 ‘하나만 잘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만능주의와 연결됩니다. 지상주의, 1등주의, 만능주의는 경쟁사회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신념과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학교는 행복한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공간입니다. 특별히 대학은 자신이 평생 즐겨야 할 삶의 주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평생 추구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곳입니다. 대학은 스펙 쌓기 경연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방학에서 스펙과 거리를 두십시오. 그것이 방학과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학기를 찾는 길이 될 것입니다.

류태호 사범대 교수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