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늘고 있는데 여행을 가서 꼭 들려야 하는 곳이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여행지 국가의 문화를 전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뙤기 때문이다.

먼저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루브르 박물관을 찾고 있다. 수천점이 넘는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왕이 거주하던 궁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다. 프랑스 국민회의는 1783년 루브르 왕립 미술관을 대중 미술관으로 개조해 일반 대중들에게 개방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할 그림이 너무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꼽는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라고 할 수 있다.

<모나리자>는 탁 트인 실내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머리를 베일로 덮고 복합한 자수로 장식된 어두운 색의 가운을 입고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초상화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접 감상하면 상상했던 이상으로 작은 크기에 가장 놀란다. 크기가 77*53 센티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당시 액자에 넣을 수 있는 최초의 그림이었기 때문에 작게 제작된 것이다.

<모나리자>를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지만 모나리자의 모델은 피렌체 공화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상인 조 콘다가 아내 리자가 아들을 낳기 전에 집을 구입해 집안을 장식하기 위해 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라는 배경이 가장 유력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공식 초상화의 우울한 분위기를 제거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악사와 광대를 화실로 초청해 모델의 순간적인 표정을 포착해 스케치했다.

화면 왼쪽 배경에 있는 돌산과 작은 오솔길과 오른쪽 말라붙은 강바닥이 보이지만 그 뒤에 있는 저수지와 연결을 확실하지 않다. 배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본 풍경들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기 때문에 계절이나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인물을 화면 앞쪽으로 더 가깝게 배치했으며 또한 윤곽선을 강조했던 이전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과 달리 명암법을 이용해 풍경과 인물이 구별 짓기 어려울 정도로 일치감을 보여주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이 작품을 의뢰인에게 전해주지 않고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초정을 받고 프랑스로 이주할 당시에도 가지고 왔다. 한 때 <모나리자>는 튈리르 궁의 나폴레옹 개인 침실에 걸려 있다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져 18세기에 최초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모나리자>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탈리아인 유리 제조공 페루자에게 도난당한 사건 때문이다. 도난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가 분노했다. 결국 1913년 페루자는 자신의 아파트에 숨겨 놓은 <모나리자>를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팔려고 내놓으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사건은 <모나리자>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사게 된 계기가 되었다.

40만점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규모는 크지만 규칙이 있다. 조각은 무게와 크기 때문에 1층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천장의 조명을 받을 수 있는 위층에서 전시되고 있다. 또한 작품들은 문화와 학파, 나라 그리고 세기별로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미술로부터 시작한 루브르 박물관이 다양한 문화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동양의 작품은 거의 없다. 초기에 귀족 취향 중심으로 루브르 박물관이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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