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컴퓨터 없는 세상’, ‘차후의 약속을 미리 잡고 헤어지던 시절’. 이제는 모두 옛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여가시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대신 스크린과 이야기하고, 전화 한통으로 갑작스런 약속을 잡는 ‘번개’가 일상화됐다.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지난 3월 27일(화)부터 29일(목)까지 3일간 고대신문 김정훈 기자와 우다현 인턴기자가 문명의 혜택(휴대폰․컴퓨터․TV․MP3)을 반납하는 체험을 했다.

아침부터 문명은 우리를 가뒀다

김정훈 | 체험을 시작한 첫 날. 긴장을 한 탓일까.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하지만 늘 시끌벅적하게 함께하던 휴대폰 알람도, 노트북 속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도 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이미 꺼져있는 휴대폰을 습관적으로 찾았다. 둘째 날 아침엔 수업 시간을 10분 앞두고 눈을 떴다. 긴장을 하고 잠에 들었음에도 나의 일부가 돼버린 휴대폰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친구들에게 출석을 부탁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우다현 | 체험 첫날,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일어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늦잠을 자거든 깨워달라고 룸메이트에게 신신당부했다. 아침이 돼 눈을 뜨고 부랴부랴 시계를 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몇 시인지 분간이 안됐다. 등교를 위해 씻고 나와 헤어드라이기를 집으면서 문득 ‘이것도 쓰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쓸 수 없다. 이것 때문에 도서관까지 가야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앞이 막막했다. 궁금한 모든 것들은 책으로만 해결해야 했다.

통신 수단의 부재가 불통(不通)으로

김정훈 |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후, 지인과 약속을 잡을 방법이 없었다. 휴대폰이 생긴 이후로 전화번호를 외워본 적이 없는 탓에 공중전화를 쓸 수 있다는 조건도 무의미해졌다. 날이 갈수록 주변 사람들의 불만도 거세졌다.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며 나를 찾았고, 여자 친구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나를 몰아세웠다. 통신 수단의 부재는 학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도 팀플 조원들은 자신들의 학업에 지장을 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세상의 소식을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접했던 탓에 학내를 걷다 만난 지인들과 공유할 이야기가 없었다. ‘정보화 시대에서 통신의 부재는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우다현 | 통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와 만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미리 정해둔 약속 장소로 나가도 엇갈리는 게 빈번했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혹여나 엇갈릴까봐 약속 시간보다 미리 장소에 나갔지만 친구가 한참 보이지 않아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라는 생각에 주변을 도는데 멀리서 친구가 여유 있게 걸어오고 있었다.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길 엇갈리면 어쩌려고 여기로 왔어?”라며 천진난만하게 묻는 친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문제였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을 통해 얼굴을 몰라도 금방 만날 수 있지만 휴대폰이 없는 경우 약속 장소에 나간다하더라도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입생이라 선배들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선배와의 약속을 깨트릴 뻔한 적도 있었다.

스쳐지나가던 것들을 붙잡다

김정훈 | 셋째 날이 되니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나를 가두고 있던 문명의 전리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휴대폰 알람 대신 탁상시계를 이용했고, 세상의 소식은 사람과 종이 신문을 통해 접했다. 여가시간에 즐겨보던 TV 대신 읽지 못했던 책을 집어 들었다.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문명의 혜택이 사라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음악으로 닫혀있던 귀와, 휴대폰에 잠겨있던 눈이 자유로워지니 세상이 넓게 보이기 시작했다. 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지인들과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하던 습관이 사라지고, 평소엔 보이지 않던 자연과 캠퍼스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우다현 | 지하철을 타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 같으면 MP3를 듣거나 휴대폰을 손에 쥐었겠지만 주변만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타던 지하철이지만 낯설게 느껴졌다. 선반 위로 진열된 수많은 광고와 주변 사람들의 삶이 눈에 보였다. 지하철을 내려 개운사를 향해 걸으면서도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개운사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연등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에 비친 누각이 연등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지만 오히려 휴대폰이 없었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문득 성시경의 노래가 머릿속을 스쳤다. MP3가 없어서 직접 노래를 불렀다. 기억나는 부분은 자신 있게, 가사가 흐릿한 부분은 흥얼거리며.  

일상에서 벗어나 보니

김정훈 | 3일간 기사를 위해 체험을 하는 동안 불편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문명의 수혜자들이었다. 나는 과학기술의 산물을 쓰지 않을 뿐, 평소와 그리 다른 삶을 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문명의 수혜자들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과학기술을 전파하며 ‘우리는 너희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을까. 문명은 우리의 의식을 흐릿하게 하는 마약은 아닐까.

우다현 | 필연적으로 문명의 도움은 필요하다.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현대에서 소통의 부재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체험을 통해 너무 문명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도의 문명사회에 익숙해져버려 삶의 ‘감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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