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차라리 전공서적을 추천하는 것이라면 명확한 기준이라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학부생 시절에 꼭 읽어야 할 책’을 고르는 것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공감을 얻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음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책을 끝까지 읽는 학부생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20세기 초반에 쓰여졌고, 현대적 감각과는 동떨어진 문체와 스피디하지 못한 글의 전개, 더구나 상당히 긴 분량의 장편소설이라는 점도 이 책과 친해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30여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당시에 느꼈던 전율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19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재미로 읽기보다는 삶의 의미와 방향, 그리고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이 책은 장 크리스토프라는 음악가의 생애를 통해 한편으로는 시대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무엇을 향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독일 라인 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천재적 음악가로 성장한다. 그의 어린 시절은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착하지만 단순한 어머니, 그리고 심술궂은 동생들로 인하여 불우하였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는 가족을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되었다.장 크리스토프가 성장하면서 연애의 실패를 경험하고 음악에 대한 애정과 음악가들의 허위를 발견하면서 점차 투사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로서 모든 억압과 투쟁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만났던 프랑스인 가정교사 앙트와넷을 통해 파리를 동경하게 되었고, 결국 독일을 떠나 파리로 가게 되었다.그러나 파리 역시도 위선으로 덮인 혼탁한 도시였고, 실망한 크리스토프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은 앙트와넷의 남동생 올리비에와의 우정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크리스토프는 유명해졌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 올리비에는 폭동 중에 희생되고, 크리스토프는 그 폭동 속에서 살인을 하고 피신하게 된다.하지만 크리스토프의 삶은 결국 음악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음악 속에서 영혼의 평온을 찾으면서 자신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관조하게 된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거둔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른바 사회소설로서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신랄한 문명비평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일종의 이상적인 사회로서 유럽 각국의 정신적 문화를 결집시키는 유럽 공화국의 형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그러나 이 작품의 위대함은 전체적인 구성이나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작품 속에 녹아 있고, 작품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그것이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에 대한 단편적이 장면들이 그 자체로서 반짝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전체적으로 이어지면서 생동감 있는 글로 엮어지는 데 있는 것이다.세상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선함을 순진무구하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각박함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고 인간의 허위와 무지를 넘어서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찾아내는 모습이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이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한 마디, “인생은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괴로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장영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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