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시간 중에 전공 분야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다음 날 친구들과 서로의 글을 읽어 보다가 흠칫 놀랐다. 서로의 글이 조금씩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서로의 생각이 닮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베껴 쓴 원문이 서로 비슷해서 나온 결과였다. 요즘 대학생에게 혼자의 힘으로 생각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고민과 성찰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립하려 노력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방법은 하나. 타인의 생각을 짜깁기하는 것이다. 지난 호 독서를 권장하는 본지 기사에서 한 교수님이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쓰는 과제를 내 주면 블로그에서 내 해석을 찾아 베껴 온다”고 말한 것을 보고 뜨끔했다. 바로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김미경, 김미화, 김혜수 씨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며 표절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재조명됐다. 이들은 타인의 지적 성과를 침해하고 학문의 양심을 저버렸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며칠 동안 포탈의 뉴스란을 장식한 이들을 지켜보며 과연 우리는 여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묻게 되었다. 글의 규모가 작다는 게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자기 고민으로 엮어내지 않은 글은 결국 남의 성과에 기대어 자신을 포장하는 일에 불과하다. 표절을 의식해 인용부호나 형식 등에 집착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시작이다. 그 때에 수반돼야 할 것은 낮은 자세이다. 타인의 생각이 담긴 저작물을 접할 때는 ‘이 사람의 의견을 내 것인 양 받아들여 아는 체 해야겠다’는 욕심에서 벗어나 겸손한 배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또한, 치열한 고민을 통해 자기화(自己化)한 내용을 글 속에 담아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였지만 글의 마무리로 인용할 만한 명구를 찾아 넷서핑을 하는 내 모습에 또다시 흠칫 해진다. 그래도 이 느낌이 학문적 양심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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