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에라 마시자~’. 막걸리 찬가의 가사가 이렇게 붙은 데에는 군부독재 하에서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막걸리 한잔을 놓고도 망설임과 충동을 겪어야한다는 설(說)이 있다. 민족의 술 막걸리를 마시는 행사가 대동제에서 주점의 형태로 자리잡게 된 시점은 1985년 전후다. 고대신문의 지면에 나타난 관련기사를 살펴보면서 석탑대동제 주점행사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봤다.

축제기간 동안 고대에 설치된 주점이건 스넥바건 모든 상품에는 ‘민주막걸리’, ‘민주파전’, ‘민주번데기’…등등 접두사는 민주. ‘민주’자가 붙으면 더 잘팔리는 것인지, 맛은 모르겠소만 장사하는데 민주를 사용해서야. 각 주점마다 가격이 비슷한 수준이었고 눈살찌푸리는 폭리도 있었다는데 상표보다는 운영이 민주여야 되지 않겠소 -1985년 5월 6일자 석탑춘추

고대신문에서 석탑대동제 관련 기사 중 ‘주점행사’를 처음 언급한 때는 1985년 5월 6일자이다. 당시엔 주점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70년대 석탑축전(현 석탑대동제)의 소비적·향락적인 특성이 이어져 온 것이 주점이라는 의견이었다. 1985년 석탑대동제의 슬로건은 ‘민족통일’과 ‘민족해방’으로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신재혁(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84년을 기점으로 축제도 이른바 ‘민족적’·‘집단적’성격을 띠었다”며 “1995년 중반 이후엔 이런 경향이 거의 사라지면서 밤에는 주점에서 술 마시고 낮에는 입실렌티를 즐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범대 김선범 부학생회장은 “주점 문화는 대학생들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학내에서 공유하고 주점수익금을 통해 친구들의 보석금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들을 충당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점에서 파는 메뉴의 가격은 오늘날에도 대체로 비싼 편이다. 소주 한 병의 가격이 4000원인 주점도 있다. 선배가 주점을 찾아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이유에 대해 배지현(문과대 사회12) 씨는 “내 후배라는 끈끈한 유대감이 후배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점일색의 대동제라는 비판이 거센 것도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목적을 가진 주점들을 준비하고 있다. 장백서점 구좌출자를 위한 주점이 11개, 북한민중돕기를 위한 주점이 20개, 민중연대주점이 8개인 것에서 드러나듯 구성원들 간의 화합도 다지고 의미있는 주점이 될 수 있어야겠다 -1997년 5월 5일자 3면 ’97 석탑대동제 행사안내 보도

1980년대 주점 운영이 ‘학생운동’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면 1990년대 주점은 선행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점을 운영한 단체가 많았다. 본교 1995학번인 신재혁 교수는 “열렸던 주점의 점포수가 지금보다는 적었지만 의미있는 일에 수익금을 쓴다며 졸업한 선배들에게도 주점에 오라고 연락을 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1997년 대동제 기간에는 근육위축증으로 전신이 마비된 소년을 위한 주점, 북한결식아동 및 소년소녀가장을 돕기 위한 주점을 마련한 바 있다. 의미있는 수익금을 마련하기 위한 당시의 흐름이 졸업생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본교생들의 모임인 ‘민주동우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주점을 열었다. 직접 재배한 쌀과 육류 등으로 운영한 주점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희생된 열사들의 유가족을 위해 쓰인다. 정기철(경영학과 87학번) 사무국장은 “이번 수익금은 민주열사 자녀를 위한 민동장학금과 故 이해상 열사의 추모기금을 위해 쓰인다”며 “앞으로도 대동제 기간에 주점을 열어 교우들과 추억도 쌓고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년에 비해 각 과나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주점수가 줄어든 반면, 학교 인근의 호프집을 세내 운영하는 일일호프는 대폭 증가. 학교 안에서 술을 팔지 않아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막걸리를 마시며 하나로 어우러지는 대동제 문화의 실종을 아쉬워하는 의견도 많았다고- 1994년 5월 9일자 3면 ‘취재낙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은 호프집과 노래방 등 유흥업소들이 많이 보편화된 시기다. 남궁명화(교육학과89) 씨는 “맥주가 비싼 건 그때도 여전했지만 생맥주를 먹기 위해 호프집을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요즘의 대동제 기간에는 대체로 캠퍼스 내에 주점행사를 차린다. 오히려 한때 흥했던 일일호프는 약간 주춤한 추세다. 원혜림(생명대 식자경12) 씨는 “일일호프에서는 요리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되고 좌석도 만들 필요가 없어 편리하지만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점만이 전해줄 수 있는 낭만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대동제 기간에는 주점이 민주광장을 비롯해서 서관 앞길과 뒷길· 국제관 앞 및 사범대학 건물을 둘러싸며 캠퍼스 곳곳에 빼곡이 자리했다. 배지현 씨는 “학교 내 주점행사는 캠퍼스가 갖는 분위기가 있어 ‘대학교에 대한 로망’의 제대로 된 예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통적으로 본교생들이 즐겨마시던 막걸리는 소주와 맥주에 밀리는 추세다. 1997년 5월 5일자 개교기념특집 ‘고대생 생활 변천사’에 따르면 ‘70년대 축제 기간에는 학교의 나이만큼 막걸리 드럼통이 운동장에 준비돼 밤새워 잔치를 벌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원 씨는 “막걸리는 사발식을 할 때가 아니면 그렇게 즐겨 먹는 술은 아니다”라며 “우리학교에서 예전부터 많이 마신 것과 막걸리에 대한 요즘 대학생들의 선호도는 별개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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