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천년이 살아 숨쉬는 고도 경주에서 열렸던 한·일포럼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로 공감하게 된 하나의 결론이다. 지난 1993년에 첫 회의를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고 올해로 11차 회의를 마치게 된 이 ‘지적 공동체’ (epistemic community)의 짧은 경험만으로도 결국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10년 전 첫 만남에서 참가자들은 어쩌면 비감어린 심정으로 역사문제에 대해서 격론을 벌였다. 역사교과서, 야스쿠니신사, 종군위안부, 어느 하나 우리 입장으로서는 소홀히 할 수도, 쉬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 격정의 토론 속에서도 한 가지 공감대는 그래도 양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뤄보자는 것이었다. 안보, 경제,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토론은 원론적 수준을 맴돌았다. 그런 가운데도 하나의 큰 결실은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아이디어가 그 회의에서 처음 나왔고 그것이 결국 열매를 맺어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라는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일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많이 달라져 있다. 무엇보다도 인적교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2002년도에만 총 375만 명이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를 방문했다. 하루 매일 만 명 정도가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1998년도 통계에는 세계적으로 210만 명의 일본어학습자 가운데 한국인이 95만 명으로 최대이다. 2001년 현재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 이수자의 51.5%가 일본어를 택하고 있다. 일본도 2001년부터 한국어를 중국어, 불어, 독일어와 함께 대합입시 외국어시험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대중문화, 출판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한국의 대중가수가 일본 최고의 인기가수이며 일본 영화가 한국의 가정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일본인들의 식탁에 오르는 절임 가운데 가장 소비량이 많은 품목이 바로 김치다.  단무지보다 무려 3배나 많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일간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많은 산들이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화약고이다. 아직도 일본 수상 및 고위 관료의 일부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고, 종군위안부, 역사교과서 문제도 언제나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양국의 언론은 이러한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서 항상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고 자극한다. 그래서 과거사문제 해결의 종착역은 어디인가를 되묻게 된다.  

그래도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중한 자세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일본의 지식인들도 있다. 이번 한·일포럼에서도 일본 측의 통상적인 설명을 뛰어넘어 ‘일본은 분명 보수화하고 있다’,  ‘북한 핵 위협을 기화로 좀 더 군비증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자기 비판적 진단들이 일본 측 참가자들로부터 진솔하게 피력되었다. 10년의 대화 속에서 작지만 신선한 충격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는 재일한국인의 참정권, 양국의 비자면제협정, 하네다-김포 셔틀, 그리고 더 나아가 자유무역지대 (FTA)창설 등 보다 심도 있는 주제들에 관한 논의들로 옮겨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숙명적으로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사이이다. 이 지정학적 관계를 허물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없다. 다만 과거사문제는 덮을 수도 덮으려 해서도 안 될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 회귀적 사고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자. 한편으로는 과거역사로 얽혀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란 가치체계를 같이하며 동북아의 여러 국제문제에서 공동의 국가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두 나라이다. 

따라서 보다 보편적 가치와 규범의 관점에서 국제문제를 보는 세계관을 가지고, 폐쇄적 민족주의보다는 열린 국제주의를, 피상적인 이상주의보다 미래지향적 현실주의를 통해 한·일의 문제를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그것을 느끼고 실천하는 지식인이 설령 소수라 할지라도 양국에 있으며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한.일의 역사는 어쩌면 이러한 소수의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뿌려놓은 조그만 씨앗에서 싹트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본다.

현인택(정경대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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