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호 공공행정학부 교수
  사고를 한다는 것, 공부를 한다는 것 특히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모든 것에서 우리는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처럼 하나의 실마리, 하나의 명쾌한 답에 치중한 나머지 어느 순간 우리의 사고 모델(cognitive model)은 문을 굳게 닫은 성(城)과 같아집니다.

  1912년 작품 ‘판결’(The Judgement)에서 약혼을 앞둔 게오르그(Georg Bendemann)는 늙은 아버지의 명령에 대한 명백한 논거도 없이 강물에 자살을 하고, 1915년 ‘변신’(The Metamorphosis)에서 그레고르(Gregor Samsa)는 아무런 원인도 모른 채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오히려 귀책원인을 자신에 돌린 채 서서히 죽어갑니다. 또한 1925년 ‘심판’(The Trial)에서 요제프(Joseph K)는 아침 출근준비 중에 잡혀가 치안판사의 법정심문을 받게 되면서도 그가 체포된 혐의에 대한 아무런 이유를 들을 수 없었고 그가 알지도 못하는 죄에 대한 부당한 논거를 끊임없이 추구할수록 그 원인에 대한 외적지지는 상실된 채 가장 논리적이어야 할 법정은 어릿광대극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그리고 1926년 ‘성’(The Castle)에서 K는 성(城) 당국에서 임명한 측량기사임을 마을사람들에게 주장하나 그들은 그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시 K는 성 당국으로부터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으려 했으나 성의 권한자에게 접근하지도 못하는 등 그의 위치에 대한 아무런 논거도 어느 누구로부터 제공받지도 못한 채 관료제의 공포속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학창시절 카프카는 미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여린 생각을 했습니다. 문학작품평론가들은 가부장적인 전통적 부조리의 사회적 압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삶을 그렸다고 평합니다. 그 뒤 저는 카프카가 23세 때인 1906년에 체크 프라하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임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제가 공부하는 영역은 행정학의 세계입니다. 논리와 하나의 정답 즉 하나의 원인이 없으면 큰 일 나는 세계입니다. 카프카가 전공한 법학은 어떻습니까? 행정학보다 더 치밀한 논리와 인과관계 속에서 생존하는 곳입니다. 이런 카프카가 이런 괴기하고 말도 안 돼는 이야기를 왜 이 세상에 남겼을까요? 교수가 된 필자는 지금까지 카프카가 세상에 남겨준 학문의 비밀을 간직하고 그 작품들을 행정학의 교과서로 읽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 및 조직은 “서로 완전히 배제적(exhaustive and also mutually exclusive)”이지는 않지만 두 가지 다른 존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답이 없으면 큰일 나는 사람 및 조직 즉, ‘확정론적인(deterministic)’ 존재이고, 또 하나는 ‘확률론적인(probabilistic)’ 존재입니다. 우리가 확정론적인 사고 속에 빠지면 빠질수록 복잡한 것은 질서와 통일을 거쳐 단순화되고 하나의 법칙, 하나의 정답, 하나의 원인만이 남게 됩니다. 마음은 편하고 세상은 쉽게 보이는 듯 하나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는 닫힌 틀(모델) 속에 존재합니다. 세상의 사건과 사람의 삶에는 그 어느 것도 합리적이고 명백한 이유 및 원인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41세에 생을 마감한 젊은 카프카는 분명코 알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뿌옇게 덥혀 제대로 보이지 않은 산과 강나루의 돛단배 등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그림을 보고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사고는 뒤가 흐리멍텅하다는 비난을 합니다. 반대로 서양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은 도화지의 끝까지 선과 곡선으로 꽉 차있고 선명하여 사고가 치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양의 그림은 세상이란 모든 가능한 요소들의 존재를 언제든지 인정하고 고려해야 볼 수 있다는 확률론적 열린 모델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캠퍼스에 새로 세워진 하나의 건물은 지워진 순간부터 노화되고 쇠퇴하여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정립한 사고의 모델과 그 잘난 과학적 이론들도 그 건물과 같습니다. 검증가능성(testability)과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이 없는 이론은 비과학적이라고 한 영국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W. Popper)의 말을 생각해보세요.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L. Berger)는 불가피하고 당연시되는 세계(world-taken-for-granted)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을 접하는 우리의 논리구조 및 사고 모형을 경우에 따라 불가피하게 닫아야(closing)한다면 그러한 모델닫기는 그 모델에 포함되지 않은 요소들의 존재와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추가로 포함시킬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는(opening)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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