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러시아 이동파 화가 바실리 수리코프의 작품 <대귀족부인 모로조바>. 17세기 러시아정교의 대분열을 다룬 이 작품엔 종교개혁에 반대한 구교도 분리파 모로조바 부인이 연행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 그림 귀퉁이에서 거지 행색의 늙은이 한 명이 눈에 띈다. 모로조바 부인을 향해 성호를 긋고 있는 그는 바보 성자라고 불리는 성인(聖人) ‘유로지비’다. 겉모습과 행동거지는 보잘 것 없었지만 짧은 말에도 진리가 담겨있던 이 걸인은 당대 러시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빈자가 한 사람 있다. 요즘 이 분이 참 이슈다. 재판정에서 “전 재산은 통장예금 29만원 입니다”했던 그의 집으로 검찰이 들이닥쳤다.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에 따라 검찰이 처음으로 그 집의 문지방을 넘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29만원만 남기고 모조리 압수해오라”는 분노에 찬 국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 전대통령은 검찰의 사저압수수색 당시 “전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이런 모습만 보여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가 진정으로 국민에게 송구하다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1672억 원의 미납추징액을 완납해야 한다. 부패자금으로 불린 돈까지 빼놓지 않고 말이다.
  러시아 회화 작품들은 ‘유로지비’를 걸인의 몰골과 더불어 몸에는 쇠사슬까지 감아 매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행색은 자신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억압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로지비’에 대한 러시아 민중의 존경은 그의 고행에 대한 일종의 찬탄의 의미였을지 모른다. 흔히 대한민국엔 국민이 존경에 마다않는 ‘어른’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전직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헌신과 사회통합에 힘쓴 노고를 인정받아 사회적 예우를 받는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여기에 늘 왕따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후보 시절 그를 찾지 않았다. 그는 국민과 시대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 물론 그 스스로도 유로지비처럼 국민에게 성인(聖人)으로 존경받길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고나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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