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선거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도 이를 두고 운치 있는 비전이라며 호평했다. 알콩한 저녁일과를 돌려주겠노라는 그의 구호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채워주었다.

  손 고문이 경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그의 슬로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문화가 있는 삶’을 주제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유진룡 문체부 장관은 ‘문화융성’과 ‘문화가 있는 삶’을 국민이 체감하는 문화로 정의했다.

  문체부는 올해 초 이 비전을 실현하겠다며 생애주기별 맞춤 문화 복지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특히 청년층에게는 관람료 할인 제도인 ‘문화패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비전은 화려하고 세부정책의 방향도 옳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체부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바로 정책대상자의 ‘의지’다.
한 친구는 모처럼 문화생활을 누리리라 마음먹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어느 유명작가의 전시회. 티켓 가격은 ‘오천 원’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표 값에 망설였다. 온라인 사이트에 가입하고 40% 할인권도 받았다. 돈 문제가 해결되니 마음이 느긋해 졌다. 어영부영하다 전시 기간이 다 끝날 무렵엔 온라인 회원에게 제공하는 공짜표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 친구는 결국 전시회 관람을 하지 않았다. 이번엔 시간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것이 대학생 문화생활의 현주소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은 스스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시간 부족’(57.8%) ‘돈 부족’(20.9%) ‘필요성을 못 느껴서’(11.8%) ‘정보 부족’(9.5%) 등을 꼽았다. 우리는 정말로 돈이 없고, 시간이 없고, 정보가 없어서 문화를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문화는 굳게 마음먹고 값비싼 재화를 투자해야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부족함’으로 자신의 의지를 정당화 하지 않아야 한다. 문체부도 ‘프리패스’ 하나로 청년의 문화체감을 증진할 수 있다고 자신해선 안 된다. 우리 스스로 문화에 대한 의지와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고나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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