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9월 문교부 교육기준령에 의해 종합대학교 설립 조건으로 200㎡이상의 박물관 설치가 의무화되며 수많은 대학들에 박물관이 설립됐다. 연세대 박물관장이자 현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회장인 김도형(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당시에는 매장 문화재의 발굴과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은 대학만이 지녔다”며 “그만큼 대학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은 중요했다”고 말했다. 독보적인 전문성을 가진 대학 박물관은 유물발굴과 더불어 한국전쟁 이후 유실된 문화재를 수집하며 현재의 한국사를 완성시키는데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문민정부 시절 대학 설립 독려를 이유로 대학박물관 설치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면서 대학 박물관들은 위상격하와 더불어 시설·예산·전문 인력 부족의 삼중고를 겪게 된다. 대학 박물관이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것도 이젠 옛말이 됐다. 재정 지원이 감소한 결과 전문 인력이 타 발굴 기관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문화재청의 발굴조사기관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발굴조사기관을 보유하고 있는 대학은 과거에 비해 그 수가 급격히 줄어 현재는 10여 곳에 지나지 않는다. 연세대 박물관 윤현진 과장은 “과거 발굴과 지표조사에 학생들도 참여시켜 전문인력 양성과 동시에 교육까지 진행했던 반면 현재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문화재청의 기준에 적합한 인력을 구성하는 것마저 힘들다”고 했다.

지원순위 밀리는 대학박물관

  “우리학교에 박물관이 있어요?” 김희영(가명·문과대 인문13)씨는 본교 박물관을 방문해본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놀라며 반문했다. 학생들에게 대학 박물관은 상징적인, 또는 그 이하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대다수 대학 박물관의 소극적인 태도에도 원인이 있지만, 박물관 관계자들은 1차적인 책임은 박물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대학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연구 자료는 문화·역사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에 적합하지만 대학 당국은 박물관을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도형 회장은 “학교가 박물관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교육적인 목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연세대의 경우 ‘프레쉬맨 세미나’(본교 1학년 세미나와 같은 제도)와 같은 의무 교육 프로그램에 박물관 관련강의를 만들고 싶어도 재정 지원과 인력의 부족으로 사실상 실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 박물관 평가제도의 미비도 박물관 운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5장 14조 2항에 따르면 대학 박물관과 대학 미술관은 대학의 중요한 교육 지원 시설로 평가돼야 한다. 하지만 대학평가지표에 박물관에 대한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지표에 민감한 대학 당국으로써는 박물관 지원은 자연스레 후순위가 된다. 윤현진 과장은 “문화와 역사는 100을 투자해서 곧바로 200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단기적,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는 현재의 대학사회가 좀 더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잘 나가는’ 본교 박물관본교 박물관은 좀 나은 수준으로, 국내에선 ‘선진화 된’ 대학 박물관으로 인정받는다. 김도형 회장은 “고려대 박물관의 경우 학교의 지원과 운영이 국내 대학 박물관 중에선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본교는 일찍이 1934년에 대학 박물관을 설립하며 문화재 수집과 보존,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재정적 지원이 감소하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본교 박물관은 오히려 적극적인 움직임과 전략적인 전시 기획으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는 학교의 재정적 지원으로 이어졌다. 배성환 주임은 “본교의 역사를 정리한 자료들로 전시를 기획해 선보이자 학교 측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지원을 해줬다”며 “학교의 기관으로서 학교와 학내 구성원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전략적으로 고민해 학교 측의 지원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본교 박물관은 대학에 대한 재정적인 의존도를 최소화하고자 스스로 기부금을 모으고, 국내 대학 중 최초로 문화예술최고위과정(APCA)을 운영해 기금을 마련했다. 또한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표조사기관, 발굴조사기관 운영을 과감히 포기했다. 배성환 주임은 “시대적 흐름에 맞춘 발전방향에 맞지 않는 부분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본교 박물관은 사회적인 가치와 인정에도 불구하고 학내 구성원과의 소통이나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배성환 주임은 “본교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공연과 강의 콘서트, 디자인조형학부의 졸업전시회도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며 “또한 1학년 세미나에 본교 박물관을 직접 투어하며 문화, 역사 교육을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기획 중이다”고 말했다.

‘잘 나가는’ 고려대 박물관

  현재 대부분의 대학 박물관은 현상유지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재정적 지원 규모의 축소는 대학사회에서 박물관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었고, 일반 사립박물관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며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학 박물관의 발전모델로 주목받는 두 대학이 있다. 창의적이고 과감한 기획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대구대와 기독교로 특성화된 박물관으로 대학 박물관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전주대다. 

  7일 한국대학박물관협회가 주관한 ‘2013 올해의 대학박물관상 및 올해의 대학박물관인상’을 수상한 대구대 중앙박물관은 ‘박물관’이라는 권위의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이벤트들을 기획해 왔다. 7월 7일 칠석에는 ‘대구대학교의 견우, 직녀를 찾아라’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내걸고 박물관을 찾은 77쌍의 대학생 커플들에게 무료 영화표를 주는 이벤트로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또한 교직원과 교직원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내 트레킹(어울림 한마당)’을 기획해 학내 구성원을 고루 고려했다는 평을 받았다. 학내 구성원에게 ‘열린 박물관’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박정숙 대구대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일단 학내 구성원이 직접 박물관에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박물관이라는 그 무게감을 어느 정도 버린 채 재미있는 기획들로 다양한 학내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박물관으로는 특이하게 전주대 박물관은 ‘기독교 특성화 박물관’이라는 기획아래 박물관을 새 단장을 시키고 있으며 내년 5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기독교 학원에 의해 설립된 전주대는 오래 전부터 기독교 관련 문화재와 유물들을 수집해 왔는데 이를 활용한 기독교 역사관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 박물관의 기능을 전면 개편해 호남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알리는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자리 잡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박현수 전주대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호남지역 기독교발전에 전주대의 역할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현재 180평 규모의 기독교 역사관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전주대 박물관은 기독교 역사관과 함께 지역적으로 유명한 한식, 한복, 한지 등의 역사를 살펴보는 ‘韓브랜드 전문박물관’을 만들어 관광객 유치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박현수 연구실장은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전주지역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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