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막스 베버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초기 베버 저작에는 인종차별주의적 요소가 많이 보이지만, 후기로 갈수록 그는 학문을 인종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초기 베버의 저작 중 그를 유명하게 만든 ‘독일 동부지역의 폴란드 이주 농업자’와 관련된 논문에는 폴란드 인에 대한 베버의 인종차별적 시각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 당시 유럽의 전반적인 인종차별에 비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초기 베버는 인종주의적·민족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그가 1894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교수로 취임했을 때 했던 연설을 들 수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독일의 통일이 독일을 세계의 강대국으로 변화시키는 정책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이었다면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르면서 통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기에는 '인종을 단위로 사회나 역사를 보는 것은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다'라며 무차별적인 인종주의와 구분되는 지점을 보인다.

 2. 동양을 비하했다?
 “‘비하’라는 단어는 문제가 있다. 비하라기보다는 ‘무시와 무지의 변증법’으로 인한 동양에 대한 평가절하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당시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서양인 연구자가 제시하는 동아시아사는 협소했다. 서양 학자들은 동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무시하게 되고, 무시하니 결국 무지해져 서구 중심주의적인 편견으로 점철된 ‘허구적 동양’을 생성한다. 베버 역시 이러한 이차적 지식으로 동아시아를 봤다. 중국이라는 거대 제국이 유럽보다 먼저 자본주의를 탄생시키지 못한 주된 이유가 개신교와 정반대되는 성격의 유교라는 종교적 기반이라 본 것이다.
 제한된 지식을 바탕으로 전개했음에도, 그의 유교- 도교론은 후에 중국학, 인도학 등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이는 학문에 관한 그의 번뜩이는 통찰력을 드러낸다.

 3. 베버가 맑스에게 질투를 느꼈다?
 “분명히 질투를 느꼈다. 그러나 베버는 맑스의 어깨 위에 서있었지, 서로 등을 돌린 사람은 절대 아니다.”
베버는 맑스의 천재성을 인정하며, ‘오늘날의 지식인, 그리고 특히 오늘날의 철학자가 얼마나 진실한가는 니체와 맑스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우리 자신이 정신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맑스와 니체에 의해 각인된 세계’라고 말했다. 이처럼 베버는 맑스와 니체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베버는 ‘노동자는 ‘굶주림’이라는 채찍에 의해서 일하는 주인 없는 노예’라고 말한다. 기업은 고대 노예제에서처럼 노예를 완전히 책임지는 주인이 아니라 일시적인 고용주일 뿐이며, 노동자는 기아의 채찍에 의해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노동을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대 자본주의의 정의에 의해서 맑스와 베버가 보통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인식하는 단순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4. 베버가 이분법적 대립도식의 행위론적, 관념론자이다?
 “베버는 이분법적인 접근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두 진영의 화해를 주도한 사람이며, 그를 이분법적인 진영에 귀속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베버가 활동하던 19세기 유럽 학술계는 행위/구조, 개인/집단, 관념/유물의 이분법적 대립도식이 팽배했다. 베버가 스스로 행위이론이나 관념론을 펼치며 이분법적 진영에 귀속될 만한 구실을 제공하긴 했지만, 그는 이분법적인 접근의 한계를 통찰하고 두 진영을 중재하려 했다. 예를 들어 당시 독일에서는 호소력 있던 맑스의 유물론을 혁명으로 이데올로기화(化)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베버는 맑스 유물론을 ‘혁명’으로 이데올로기화한 것을 비판했다. 학문의 가치를 이데올로기와 섞는 경향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볼 때 베버의 학문이 단순한 대립도식의 관념론적이라는 규정은 문제가 있다.
 
 5. 한국 사회가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 사회인가
 “베버의 이름으로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다. 막스 베버는 고리대금업과 같은 금융업에 종사했던 유태인을 ‘천민’으로 간주해 이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에서 천민(Paria)민족은 정착할 지역적·문화적 근거지를 찾지 못하고 방랑하는 민족 내지 집단이다. 베버는 유태인을 천민민족으로 간주했다. 유태인은 근거지를 찾지 못하고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면서도 생존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에게 금지돼있던 고리대금업과 같은 금융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베버는 금전욕에 집착하는 유태인을 염두해 이 표현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천민자본주의’는 원작자 의도와 다르게 쓰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쓰이는 ‘천민자본주의’ 표현
도덕성이 결여된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금전만능주의와 승자독식주의를 바탕으로 한 타락한 자본주의의 형태를 천민자본주의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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