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친숙한, 묘한 매력을 가진 스팀펑크가 찾아온다. 예술의 전당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스팀펑크아트전은 그 독특한 소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아트센터이다(대표=홍경기)의 유제승 큐레이터와 전지원 코디네이터의 조언을 받아 스팀펑크에 대해 알아봤다. 

 스팀펑크란? 
▲ <사진1> K.W. 지터 Morlock Night 표지

 스팀펑크는 산업 혁명기를 대표하는 증기기관 ‘스팀(steam)’과 주류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뜻의 ‘펑크(punk)'가 결합한 단어다. 스팀펑크를 명확하게 규정할 문헌이나 이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 속 어딘가에서 스팀펑크를 접하며 막연한 친숙함을 느낀다. 스팀펑크라는 용어는 공상 과학 소설에서 태어났다. 소설가 K.W. 지터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공상 과학 문학 장르를 표현하기 위해 스팀펑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진1> 
 
▲ <사진2> 증기기관차

 ‘영국 빅토리아 시대 증기 기계가 소멸하지 않고 지금까지 발전했으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의 답이 스팀펑크다. 따라서 스팀펑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증기기관이다. 스팀펑크 작품은 증기기관과 더불어 복잡한 전선, 구리, 황동 등을 사용하여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사진2> 
 

 스팀펑크 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은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과거 스팀펑크아트는 괴짜들의 전유물이었다. 일부 작가들이 향수를 일으키는 소재를 이용해 금속의 무언가를 만들어 냈지만, 대중들은 그것을 예술로 보지 않았다. 이렇게 외면받던 스팀펑크 작품을 예술로 탈바꿈시킨 것이 인터넷의 발달이다. 2007년 이후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소통의 장이 열리자 괴짜들은 세계 여러 곳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사진 혹은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고,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순수 미술로서의 스팀펑크
 스팀펑크 작품 중에서도 특히 순수 미술 작품은 난해한 것이 사실이다. 강한 이미지에 일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뿜어내는 묘한 분위기는 스팀펑크만의 독특한 매력을 잘 드러내 준다.    
▲ <사진3> 제이슨 브래머(Jason Brammer) 타임머신

 작품 <타임머신>은 무엇을 형상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땅속에 오래 묻혀있던 유물을 막 꺼내온 느낌을 준다. 작가 제이슨 브래머(Jason Brammer)는 구리, 철, 황동 등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소재를 이용해 낡은 유물을 만들었다. 다른 차원이나 시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포착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유제승 큐레이터는 “사용되지 않아 버려진 소재에 생명을 불어넣어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스팀펑크 작품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사진3> 
 




 <꿈의 악마>는 섬뜩한 해골을 새의 부리가 톡 톡 치는
▲ <사진4> 한진수 <꿈의 악마>
살아있는 작품이다. 새의 부리가 닿는 부위는 살짝 패여 있어 분홍색 뇌의 모습까지 드러난다. 전시장 내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이 해골 모양의 작품은 한국 작가 한진수가 만들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목재와 철재로 만들어진 기계 장치다.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삐그덕 소리를 내며 한 바퀴 돌아가면 철재로 만들어진 새의 부리 모양이 해골을 때린다. 유제승 큐레이터는 “현대의 기계 장치는 부품이 속으로 들어가 숨겨져 있지만 스팀펑크 아트는 이를 겉으로 드러내 디자인적 요소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사진4>  
 
▲ <사진5> 박종덕 <골든 사이언티스트>

 투박한 모습과는 다르게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박종덕 작가의 <황금을 만드는 과학자>이다. 작품의 이야기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부패한 사업가가 버려진 폐기물을 이용해 돈을 벌 속셈으로 과학자를 고용하면서 시작된다. 과학자는 연구 과정에서 실린더 4개를 이용해 금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했지만, 독성 물질 탓에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계가 악용될 우려에 과학자는 기계와 함께 잠적했고 사람들은 평생 그를 찾지 못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토대로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이 <골든 사이언티스트>다. 실제 작품의 실린더 속에는 파란 액체가 들어가 있으며 실린더 전체가 천천히 회전한다. 또한 실린더 뒤쪽에는 금가루가 들어있어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사진5>

 
 만약 중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면

▲ <사진6> 제임스 잉(James NG) <너구리 급행열차>
어떤 모습이었을까? 홍콩 작가
제임스 잉(James NG)은 자신의 문화를 토대로 스팀펑크 작품을 탄생시켰다. 스팀펑크 아트가 어느 한 곳에 근거지를 두고 발전해온 장르는 아니어서 다양한 문화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색을 강하게 표출한다. 특히 제임스 잉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판타지적 이미지를 홍콩 문화를 토대로 독특하게 표현한 대표 일러스트 작가이다. <사진6>  

 만약 중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홍콩 작가 제임스 잉(James NG)은 자신의 문화를 토대로 스팀펑크 작품을 탄생시켰다. 스팀펑크 아트가 어느 한 곳에 근거지를 두고 발전해온 장르는 아니어서 다양한 문화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색을 강하게 표출한다. 특히 제임스 잉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판타지적 이미지를 홍콩 문화를 토대로 독특하게 표현한 대표 일러스트 작가이다.    

 

▲ <사진7> 마틴 호스풀(Martin Horspool) <로봇 아인슈타인+빛나는 펠드맨>
공예품으로 탄생한 스팀펑크
 스팀펑크 장르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공예품에도 스팀펑크적 요소가 반영됐다. 순수 미술 작품과는 달리 스팀펑크 공예품은 아기자기하고 다소 엉뚱한 장난감 모양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장난감 로봇 같은 두 작품은 일상생활 주변의 물건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마틴 호스풀(Martin Horspool)의 작품이다. 그는 스팀펑크의 상징물인 기압계, 시계, 온도계, 전선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 철제 로봇 장난감 모양의 작품은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전지원 코디네이터는 “마틴 호스풀은 길가나 폐품 처리장 등에서 직접 작품의 소재를 구한다”며 “이 작품을 위해서 1960년대의 녹슨 철제를 옥션에서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사진7>
 
 동물 혹은 곤충과 같은 생명체를 오브제로 활용하는
▲ <사진8> 천공성-하늘을 나는 거대 도시
야스히토 우다가와(Yasuhito
Udagawa)는 “가능한 삶의 주변에 있는 소재를 작품으로 삼는다”며 “주로 종이 혹은 지점토를 이용해 작품의 몸체를 만든다”고 말했다. <천공성-하늘을 나는 거대 도시>는 우다가와의 작품관과 정교한 세부묘사가 돋보이는 대표작품이다. 그는 “고대 인도 신화를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었으며 구석구석에 인도 문화와 관련된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천공성>은 해와 달, 코끼리, 거북이 등의 인도 문화요소와 복잡한 전선과 구리 같은 스팀펑크적인 소재가 조화를 이루며 작가의 독특한 작품관이 잘 표현돼있다. <사진8> 



 디자인에 녹아든 스팀펑크 
 스팀펑크는 예술작품을 넘어 우리 일상생활의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스팀펑크 장르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스팀펑크를 접하고 있다. 유제승 큐레이터는 “단조롭고 깨끗한 현대 디자인과는 달리 스팀펑크는 시계태엽장치나 톱니바퀴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향수를 건드린다”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패션, 장식, 애니메이션 등에 스팀펑크적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 <사진10> 놈놈놈 송강호

 스팀펑크 디자인은 최근 패션 업계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유명 패션 브랜드 프라다에서 배우 게리올드만에게 스팀펑크 룩을 입혀 광고 모델로 사용한 바 있다. 스팀펑크 패션은 마스크, 모자, 가죽, 코르셋 등을 특징적 요소로 가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배우 송강호의 패션도 고글과 가죽 모자를 활용한 스팀펑크 룩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10> 
 
인기 애니메이션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도
▲ <사진11>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팀펑크 디자인이
자주 활용된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 소재가 되는 하울의 성은 다양한 스팀 기계와 곳곳의 톱니바퀴, 이를 지탱하는 철제 다리가 조합된 전형적인 스팀펑크 디자인이다.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마할아범이 작업을 하는 곳도 온도계, 황동 스팀장치, 파이프 등의 스팀펑크적 요소로 구성돼 있다. <사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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