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정기 고연전은 그 당시 사회의 혼란상을 그대로 반영했고 정기 고연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차츰 일기 시작했다.

1975년 9월 12일 두학교의 정기 고연전 중지 성명이 발표돼 또 한번 고연전이 위기를 맞게된다. 이 당시 두학교의 총장들은 성명을 통해 승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이뤄져 양교 친선이라는 개최 목적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정기 고연전을 무산시킨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은 양교의 화합보다는 승패에만 집착했으며 이로인해 상대팀 학교 학생들과의 폭력사건도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당시 사회의 어두운 분위기 또한 정기 고연전 진행을 어렵게 했다. 1971년 위수령이 내려지는 10·15사태와 더불어 1972년 10·17사태에 대한 휴교령은 정기 고연전을 무산시켰다. 이때부터 고연전의 피날레라고 할 수 있는 가두행진을 경찰들이 부분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종필(국문학과 78학번) 씨는 “당시 경찰들은 학생들이 가두행진 도중 반전구호, 정부비판 구호를 외칠까봐 철저히 감시했고 가두행진의 시위 여부는 정기 고연전의 경기 못지 않게 학생들의 큰 관심사였다”고 회상했다.

지금의 안티 고연제 같이 정기 고연전에 대한 비판도 이때부터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다수의 본교 학생들은 여전히 정기 고연전에 대해 호의적이며 계속 이어나가길 강력히 희망했지만 소수 학생들은 엘리트주의 타파 등을 내세워 정기 고연전을 반대했다. 당시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정기 고연전은 고려대와 연세대의 우월주의를 대표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기고연전은 당시 비판을 이어받아 1983년부터 보는 고연전이 아니라 참여 고연전이라는 목적으로 학술, 문화, 대동제와 본교와 연세대 학생들간의 교류가 첨가되는 고연제가 열렸다. 당시 정기 고연전 상황에 대해 최영기(경영학과 71학번) 씨는 “일부 스포츠를 가지고 대결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이제는 이러한 대결보다 대학생다운 경쟁이 필요한 듯 하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에는 어두운 사회 분위기와 정기 고연전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정기 고연전은 침체기에 접어들기도 하고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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