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일, 한국 최초의 PC통신 서비스업체 중 하나인 하이텔(www.hitel.net)이 전체 시스템을 인터넷 기반으로 전면 개편했다. PC통신에 인터넷으로 접근 가능한 환경만 추가된 기존 인터넷 서비스와 달리 PC통신과의 연동을 끊고 100% 인터넷 환경으로 변화한 것이다.

1980년대 말 등장한 PC통신은 통신 서비스 업체가 정보 공유를 위해 만든‘폐쇄그룹’통신망을 가리킨다.  사용자들은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의 대형 서비스 업체에 가입해 통신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타 회사 사용자와는 정보를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에‘폐쇄그룹’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PC통신은 성장을 거듭해 1999년에는 이용자 7백만 명을 돌파, 급기야 1천만 명 시대를 열기도 했다. 국내에 처음으로‘사이버세계’를 가져와 인터넷 강국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 장본인이다. 파란 화면과 흰 글자들은 PC통신의 대표적 이미지이다. 문자 위주의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동호회와 채팅방, 머드게임 등이 주된 용도였다. 또 메뉴 이동시 키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했다.‘고려대학교 통신 동호회’ 입력어인‘GO TIGER’는 이제 과거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PC통신 사용자들은 대부분 전화선을 이용한‘모뎀’으로 접속했기 때문에 매달 나오는 전화비에 심장을 졸이기도 했다. 박일현(서울대 전기공학부 01) 씨는“그 당시 소원은 집에 2대의 전화기를 갖는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PC통신을 사용하면 통화 중이 되버리는 전화 때문이다. 모뎀 특유의 접속 소리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특히 밤에는 빠른 속도와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어 접속자가 많았다. 집 안의 적막을 깨뜨리는 시끄러운 접속 소리는 사용자를 바짝 긴장시킨다. 하지만 접속에 성공하면 멈출 수 없는 채팅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현재의 인터넷에 비해 느린 속도로 인한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필요한 자료를 받기 위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리곤 했다. 밤새 컴퓨터를 켜 놓고 아침에 다운로드가 완료된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느린 속도에 기반한 PC통신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연결한 인터넷의 등장 때문이다. 누구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개방성과 화려한 멀티미디어를 내세운 인터넷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빠르게 보급됐다. 전 세계를 망라하는 인터넷의 방대한 정보와 편리한 사용환경, 빠른 속도, 무료라는 인식 등은 사람들이 미련 없이 PC통신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PC통신 업체들은 인터넷 포털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부활을 모색했지만 인터넷의 확산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이텔의 시스템 개편은 사실상의 PC통신 사업 중단을 의미한다. 동호회 등의 서비스는 일부 사용자들의 반발로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지만 PC통신 잔류를 신청한 모임은 2∼3개에 불과한 상황이다. 하이텔 관계자는“아직 서비스가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업체 측에서는 회원 감소로 인한 존립 위협을 개편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업체가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표현하기도 한다. 새로운 인터넷 접속 회사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만을 고집한 PC통신 사업이 시대에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권태훈(한양대 디지털경제학부 00) 씨는“VT(Virtual Terminal)를 좀 더 개량해 웹 쪽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한다. 또 업체에서 PC통신 게시판의 수많은 글과 자료들을 유지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한편, PC통신 중단으로 인해 매니아들이 즐길 공간이 없게 되자 웹 상에 PC통신을 구현해 놓은 곳이 있어 주목을 끈다. 모뎀 이용 시절 접속번호였던‘01410’을 따서 만든‘www.01410.net’에는 PC통신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들로 가득하다. 사이트 첫 화면에서 들리는 모뎀 접속 소리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이다. 이 밖에도 하이텔의‘EOS(98학번 대학생 소모임)’가 만든 웹사이트‘www.eos98.com’과 나우누리를 모델로 한 PC통신 서비스인‘vtmode.com’,‘숭실대 리눅스 사용자 모임(open.ssu.ac.kr)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사회에서 오히려 PC통신 쪽으로‘역류’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PC통신 매니아들이 가장 우선으로 꼽는 것은 메일 아이디와 동호회 활동 등 PC통신에 서린 추억이다. 몇 번을 고친 끝에 게시판에 글을 올리던 기억과 사람들과의 진지한 토론 등 PC통신만이 가진 인간미는 사람들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또한 PC통신만의 질 높은 통신 문화도 중요 요인으로 꼽힌다. 사용하는 사람이 한정돼 있던 PC통신에서는 통신 예절 문화가 존재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존칭을 쓰는 것이 기본이었던 것이 한 예다. 우은주(정보통신대 컴퓨터 02) 씨는“가벼움만 추구하는 지금의 인터넷 채팅방, 커뮤니티들과 비교했을 때 당시에는 교양을 갖춘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광고, 스팸메일, 아바타 등이 난무하는 인터넷과 달리 정보를 간결하게 보여주는 것도 PC통신만의 매력이다. 비록 인터넷처럼 광활한 정보는 제공하지 못하지만 빠른 속도와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복고적 현상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효곤(정보통신대 컴퓨터학과) 교수는“소수 체제의 오붓한 분위기를 누려 보려는 시도로 평가되지만 크게 확산될 경향은 없을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전 추억을 즐기는 하나의 현재 트렌드로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몇 년 안에 그 명맥마저 끊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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