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법에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다(제21조 1항). 그런데 최근 도둑뇌사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법원의 판결과 국민의 법감정 사이에 큰 간격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은 집에 침입한 도둑을 빨래건조대로 때려 식물인간으로 만든 집주인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실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에 많은 국민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즉, 야간에 그 도둑이 어떠한 위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타난 결과만 가지고 정당방위 성립을 부정한 법원의 결정을 상당수의 국민은 수긍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60여년의 역사 속에서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고작 14건에 불과하여 국민들로부터 정당방위의 인정에 인색하다는 비판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도 보면, 야간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행인들로부터 도둑으로 오인 받아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상황에서 주변에 있는 곡갱이나 식도를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하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손톱깎기칼을 휘둘러 다치게 하면 정당방위를 인정한다는 식이다. 즉 판례는 야간에 무차별 폭행을 당하여 죽을 것 같은 위험에 처하더라도 주변을 차분히 더듬어 보아 곡갱이나 식도 그리고 빨래건조대가 손에 잡히면 미련없이 버리고 손톱깍기 칼을 골라서 휘둘러야 정당방위가 된다는 것이다.

  판례가 이렇다 보니 일반 국민 사이에는 “싸움나면 무조건 맞아라?”라는 말이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이것은 정당방위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싸움에서 쌍방이 폭행죄 등으로 처벌되거나 조금이라도 때려 상처가 나면 치료비 등을 배상하여야 하는 등의 합의를 보느니 차라리 맞는 게 돈을 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국민의 일반사회생활에도 영향을 주어 공공장소에서 싸움이 나더라도 ‘괜히 끼어들어 말리다가 같이 폭행죄로 엮일까봐’ 지켜만 보고 있고, 가해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노인이나 여성 등이 폭력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을 보고도 ‘말리려 나서봐야 자기만 손해다’라는 생각에 못 본 척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최근 왕십리 지하철역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람을 아무도 말리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던 것은 이러한 국민의 상식(?)이 반영된 결과다. 사회질서를 올바로 세워야 할 법이 국민들로 하여금 방관자로 비겁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은 정당방위의 성립범위를 확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법원이 정당방위를 확대하지 않고 과거처럼 그 인정범위를 좁게 본다면, 시민이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신을 정당방위로 보호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또한 정당방위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여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 그만큼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원은 정당방위 성립의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법원은 정당방위를 너무 쉽게 인정하면, 정당방위를 빙자하여 오히려 폭력사태가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 없는 이유만으로 정당방위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법원은 나타난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사람의 의사와 사건의 경위를 면밀히 판단하여야 한다. 이 점은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이다. 방위행위자의 마음속에 있는 의사나 동기를 밝혀내거나 입증하기 어렵고 귀찮다고 해서 나타난 결과만으로 단순 쌍방폭행으로 처리하는 관행을 청산하여야 한다. 또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 판결을 하면 승진에 문제가 생길까봐 부장판사가 될 때까지는 소신 있는 판단을 자제하는 법원 분위기도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일반 시민들도 사고 현장에서 ‘남이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방관하지 말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한다. 국가나 사회 탓만 하며 자신은 방관자나 비겁자가 아니라는 변명만 늘어놓기보다는, 지금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나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폭력현장 등을 목격하면 먼저 신고하고 폭행을 제지할 힘이 없다면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해서 증인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정당방위 상황에 처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처 등을 구해서 사후에 정당방위 주장을 위해 증인이나 증거를 확보하여야 한다.

김병수 (부산대 교수 법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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