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게 봄바람이 부는 어느 평범한 날, 늘 같은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가 역시나 오늘도다. 12시 44분. ‘대디’라는 발신정보. “여보세요”. “밥은 먹었어요 우리 딸?”. “네, 그럼요. 아버지는요?” “아빠도 먹었지요. 그래, 어서 수업 잘 듣고…” “네, 아버지도 몸 조심하세요” 뚜뚜뚜… 늘 뻔한 레퍼토리로 진행되는 1분여 간의 짧은 통화. 점심을 안 먹었지만 먹었다고 대답하는 뻔뻔함은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무뚝뚝한 내 말투에도 매일같이 전화를 거시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 덥수룩한 당신의 수염으로 곧잘 괴롭히곤 하셨다. 난 그 수염을 너무나 싫어했다. 까슬까슬 건강하게 자라나던 수염은 지금은 어느새 힘을 잃어 쳐져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던 아버지의 어깨도 풀죽어 있다. 어릴 땐 너무나 커 보여서 두 눈에 담아낼 수 없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젠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의 모습이 내 두 눈에 들어올 때, 예전엔 강인해보이기만 했던 아버지에게서 외로운 뒷모습을 발견할 때, 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 하나 시도하는 데에도 예전과 달리 수많은 고민과 두려움이 먼저 앞서다. 그러한 내 모습에 아버지의 모습이 영화 속 장면처럼 교차하며 지나간다. 

  내가 전화를 받지 못 할 때, 아버지는 걱정을 하신다. 내가 공부하거나, 일 하는 데 당신의 연락이 방해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한테 연락을 시도하기까지 몇 번이고 망설이고 고민한다. 딸한테 연락하는 것도 엄청난 고민 끝에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려온다.

  무심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나날들,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평범하게 내 일상이 되어주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무심하게 흘려보내버린 것이 아닌가 슬프고 아쉽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내 일상을 채워준 그대에게 오늘은 사랑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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