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나눠드린 안대를 써주세요.” 지난 주에 워크숍을 취재하던 중 졸지에 나도 안대를 썼다. “저를 따라 한 명씩 차례로 밖으로 데려다줄 거예요. 여러분은 밖의 모습을 그대로 종이에 그리시면 돼요.”

순식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세계로 들어섰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 문이 열릴 때마다 귓속으로 들려오는 소리. 모든 게 낯설었다. 나는 언제쯤 밖으로 나갈까. 기다리는 동안 혼자 걸어가 볼까 했지만, 그냥 제자리에 서 있기로 했다.

그때 누군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순식간에 돋는 소름. “자, 천천히 따라오세요.” 아까 들었던 목소리, 따뜻한 체온, 선생님일 거라 확신이 들었지만, 어둠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내 몸은 경직된 채 불안해 보였다. ‘아까 후다닥 지나온 거리가 이렇게도 먼 길이었나’. 난생처음 온 곳처럼 내 발걸음 소리조차 낯설게만 느껴졌다.

선생님이 인도해준 곳에 서서 펜을 잡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하고 들려오는 소리와 촉감으로 그림을 그려보라”는 말에 따라 흰 종이에 선을 그어나갔다. 이어폰을 매일 끼는 탓에 사오정 소리를 듣는 나인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오른쪽을 향해 잽싸게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오늘따라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익숙함에 둔해진 것들. 눈을 뜨고 있을 땐 미처 신경 쓰려 하지 않았던,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로드마스터와 함께 어둠 속 일상을 체험하는 ‘어둠 속의 대화’ 전시가 있다. 국내 상설전시를 시작한 이후 누적 관람객이 20만 명을 넘어섰고, 이색 데이트코스로도 유명한 이 전시에는 무슨 특별함이 있는 걸까. 그 특별함은 ‘어둠'이라는 상황 속에서 시각 이외의 다양한 감각들을 활용한 낯선 소통일 것이다. 어둠 속의 대화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시각 외의 다른 감각들이 어둠 속에서 낯설지만 진솔한 대화를 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도 가끔 어둠 속의 대화가 필요하곤 하다. 이때까지 봐 왔던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협소함. 언제나 그랬듯이, 항상 내 옆에 있을 거란 착각에 잊어버린 소중함.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은 사랑에 둔해져 버린 감정.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아닐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고 소중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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