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 은행건물 계단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일전에 여기서 친구를 기다리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 마치 배경 같았던 두 사람을 보았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다’며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아주머니와 유학학원 홍보 가방을 매고 서성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표정의 청년. 그는 아예 세월호 부스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청년이 끼고 있던 흰색 이어폰이 왜 그리 잘 보이던지.

  6일자 경향신문 1면은 꽤나 파격적이었다. 창간 70주년을 맞은 경향신문은 창간기념호 1면에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그려 넣었다. 먹다 남은 컵라면과 포장을 뜯다만 삼각김밥이 1면 머리기사 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헤드라인 역시 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 깨알 같이 쓰인 기사 위에 큼지막하게 날려 쓴 필기. ‘오늘 알바 일당은 4만 9천원... 김영란법은 딴 세상 이야기.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

  누군가는 사람들이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나 미르재단 의혹과 같은 사회적·정치적 현안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세월호가 지겹다고 등 돌리는 사람들에게, 노조파업은 밥그릇 싸움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 그렇지만 일당 5만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을 번다면, 그리고 그 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삶을 산다면, 타인의 불행을 위해 슬퍼할 하루가 남아 있기나 할까.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이 300만 명이다. 당장 내일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걱정할 짬이 있을까.

  그래서 정치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나 아닌 타인에게 가해진 폭력에도 분노할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것. 적어도 먹고 살 걱정으로 모든 삶이 소비되는 불상사를 막는 것이 정치다. 그리고 진짜 정치인이라면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판을 벌여야 한다. 연예인을 증인으로 부르려는 국정감사가 아니라.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정치인들은 대중이 정치에 염증을 내도록 하고 있다. 그 염증의 장막을 돌파해야 우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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