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오는 밤, 가족과 둘러 앉아 케이크를 먹었다. 나름 초를 꽂아 분위기까지 냈다. 무탈하게 2016년을 넘긴 우리 가족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새해 인사를 건넸다. 이제 4살이 된 조카의 재롱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 있었던 일들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포크를 움직이던 찰나, 누나의 한 마디가 귓전을 강하게 때렸다. “어째 새핸데 새해 같은 기분이 안 나냐.”

  맞다. 핸드폰 속 시계는 2017년 1월을 표시한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벽에 걸린 달력도 2017년을 알린다. 예년 같으면 12월부터 1월까지 새해를 기념해 나라가 들썩였을 것이다. TV는 ‘정유년 운세 풀이’, ‘새해 다짐’ 등을 쏟아내고, 사람들은 올해의 목표를 세우며 보람찬 한 해를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은 뭔가 다르다. 행인들의 표정은 새해가 오기라도 했냐는 듯 무표정하다. 방송은 ‘운세 풀이’ 대신 연일 터지는 의혹을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다. 광화문 광장부터 팽목항까지, 서울부터 덴마크까지 언론과 방송사의 취재진들은 신발 벗을 새도 없이 뛰고 있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의 번화가에선 집회가 벌어진다. 10월부터 켜진 촛불은 모 국회의원의 말과 달리 어떤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횟수로는 13번, 달수로는 3달이 넘도록 국민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힌다. 12월 31일 열린 10차 촛불집회는 누적 참가인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신년사에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흔한 새해인사가 지금처럼 특별하게 와 닿은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송구영신,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을 뜻한다. 2016년 9월 20일, 한겨레 신문이 최순실이 깊이 관여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 10월 19일, JTBC는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고 보도했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들 중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국민들은 2016년의 ‘묵은 때’를 하루빨리 벗겨내고 싶어 한다. 구석구석 낀 때가 벗겨질 때, 국민들은 비로소 새해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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