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수를 가리는 시험에서 컨닝이라 불리는 부정행위(cheating)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온라인 게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게임 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온라인 게임을 해 본 독자라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익숙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도 있을 터이니 잠깐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 게임 핵은 게임이 자신에게 유리해지도록 만든 부정프로그램을 통칭하는 용어다. 대표적인 핵으로는 리니지와 같은 MMORPG에서 자동 사냥을 해주거나, 서든어택 같은 1인 총싸움 게임(FPS)의 자동 조준이나 대충 쏴도 기가 막힌 샷(헤드샷)이 나오게 하는 ‘오토에임 핵’, 스타크래프트 같은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게임(RTS)에서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상대방의 진영을 보이게 만드는 ‘맵핵’,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스킬 회피나 스킬의 정확도를 높여주는 ‘헬퍼’ 등 인기 있는 거의 모든 게임에는 핵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임 핵을 사용하는 것이 접속차단과 같은 처벌을 받고 도덕적으로 양심에 가책을 느낄만한 떳떳하지 못한 행동임에도,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수많은 심리학적 기제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개를 추려 설명하겠다.

  첫 번째로 ‘유능감(competence)’의 욕구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욕망을 대안적으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마음대로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게임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온전한 ‘나의 제국’을 경험하게 해준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불세출의 영웅이나 황제가 되는 것이고, 대전게임에서는 총사령관이 된다. 그런데 이런 노릇도 만만치 않다. 허드렛 몬스터를 지속적으로 사냥해야 한다니 영 내키지 않는다. 또 대전게임에서 나 보다 더 잘하는 사령관을 만나니 여기서도 엑스트라가 된 기분이다. 이때 쯤 ‘내가 이러려고 게임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게 된다. 이런 게임 속에서 불쾌함을 일으키는 패배나 귀찮음을 말끔히 해소시켜주는 해결사가 바로 게임 핵이다. 그러니 게임 핵을 통해 게임의 지배자가 된 느낌을 받는 사람은 게임 핵 사용을 중단하기 어렵다. 게임 핵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손실 혐오(lose aversion)’의 심리다. 게임 핵 중독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욱’해서 간혹 사용하는 유저들이 있다. 특히 얄미운 경쟁자에게 게임을 지게 되는 상황에서 게임 핵을 호출하게 된다.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일상다반사지만, 패배와 승리는 일대일의 동등한 가치가 아니다. 칭찬 한번 듣고, 다음에 꾸지람을 한번 받으면 그냥 퉁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 없다. 꾸지람이 훨씬 오랫동안 강력하게 마음에 남는 것이 ‘손실혐오’의 사례다. 승리와 패배도 마찬가지다. 패배가 더 쓰라리게 마음에 남기 때문에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간혹 연속해서 게임에 질 때, ‘한 판만 이기고 게임을 끝내야지’라는 생각은 게임 이후 손실혐오가 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고자하는 전략이다. 그런데도 계속 진다면, 컴퓨터에 깔린 게임 핵의 도움이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즉 게임 핵은 게임에서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의 기분까지 보호해주는 ‘안전망’의 역할을 수행한다. 

  세 번째는 ‘과시욕’이다. 과시욕은 게임 외적 요소로서 랭킹, 티어, 승률 등 타인들에게 공개되는 나에 대한 정보를 돋보이고자 하는 욕구다. ‘내 승률 좀 봐! 내가 이렇게 대단하다구. 부럽지?’ 사실 이런 욕구는 명품을 가지고자 하는 욕구와 다를 바 없다. 명품이란 것은 가격이라는 장벽을 통해 구축되는 희소성의 가치에 크게 의존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상위 티어나 높은 승률은 무턱대고 게임을 많이 한다고 얻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만큼 게임의 기술과 재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더군다나 그 게임이 누구나 하고 있는 인기 게임이라면 티어와 랭킹의 가치는 현실세계 명품의 아우라를 뛰어넘게 된다. 그래서 롤과 같은 인기게임에서 내 대신 티어를 올려줄 ‘대리게임’이 성행하는 것이나, 돈을 주고 게임 핵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이나 동일한 심리기제에서 나오는 현상이라 보인다.

  네 번째로 일탈이 주는 ‘짜릿함’도 빼놓을 수 없는 게임 핵의 심리적 경험이다. 이것은 ‘자극추구성향(sensation seeking)’과 연결된다. 시키는 일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반면 시키지 않은 일, 혹은 금지하는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고 흥미를 돋운다. 특히 위험한 일이면 일일수록 재미가 증가한다. 평소에는 별로 게임을 하지 않다가도, 꼭 시험 때만 되면 게임이 더 재미있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유사하게 게임에서 게임 핵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것을 고의로 위반하고 사용하는 것은 매우 자극적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이미지가 주는 비인격성도 게임 핵을 사용하게 되는 도덕성 약화의 주요인이다. 즉 사람을 마주 보고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상의 이미지와 경쟁을 하기에 이들에 대한 부정행위는 직접 사람에게 부정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 부담감이 훨씬 감소한다. 게임 핵의 사용이 용이해지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핵 유저만 있는 '핵방'을 만들자”

  게임 핵은 게임 핵 제작자를 포함한 모든 관여자를 패자로 만든다. 첫 번째 패자는 유저 자신이다. 아무리 목이 마르더라도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되는 것처럼, 게임 핵을 사용하는 심리는 게임 핵을 사용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구에 반한다. 게임 핵을 사용하면 절대로 게임이 늘지 않을 뿐 아니라 게임의 재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얻은 명품 같은 티어도 사실은 짝퉁이란 것은 실제로 대전해보면 금방 들통 나는 ‘벌거벗은 임금임’과 다를 바 없다. 두 번째는 정상적으로 게임을 하는 게이머를 기망하고 모독하는 행위다. 게임 핵은 공정한 규칙이 생명인 게임의 룰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자금을 들여 제작하고 운영하는 게임사에 손해를 끼치는 범죄행위다. 국내에서 서든어택 게임 핵을 만들어 판매한 20대 젊은이들이 입건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롤 헬퍼 제작자를 라이엇이 소송을 통해 1000만 달러 배상판결을 받기도 하였다. 이제는 게임 핵이 장난으로 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만들거나 쓰실 요량이면 큰마음을 잡숫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게임 핵을 막을 심리학적 묘책은 없을까? ‘없다’가 내 대답이다. 게임 핵은 게임 밖 세상의 불공정이 있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게임도 세상의 일부이기에 그렇다. 이런 것을 그냥 두고서 게임 핵을 막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책을 마련한다면, 게임 핵을 사용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구를 풀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심리적 반발(psychological reactance)이 나온다. 이걸 방지하려면, 온라인 게임상에서 ‘핵방’을 만드는 것이다. 굳이 사용하고 싶다면, 그 방안에서 마음껏 사용하라는 양성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이것의 이면 의미는 ‘다른 곳에서 사용하면 그건 멍멍이 짓’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또 한가지 대안으로 핵을 사용하지 않는 유저의 가치를 상승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유저들이 인정하는 ‘게이머 중의 게이머’라는 의미로 승률과 상관없이 ‘명예 랭킹제도’도 고려해볼 만하다. 깨끗한, 좋은 승부를 펼친 상대에게 주는 평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일 듯하다.

글 |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