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법을 잊어버렸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 A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쉬는지 잘 모르겠단다. 그날은 친구가 공무원 시험을 본 날이었다. 노량진에서 공부 중인 그는 앞자리에 앉기 위해 매일 새벽 다섯 시면 학원 앞에 줄을 선다고 했다. 

  “나 휴학할 거야.” 대개는 ‘왜? 휴학하고 뭐 하게?’란 물음이 이어지겠지만 내게는 의아하다는 눈빛이 돌아온다. 삼수를 해 이미 2년이 늦었는데 졸업은 언제 하냐는 것이다. 이내 나이가 많으면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조언도 더해진다.
경쟁에 익숙해져서일까. 우리 사회는 유독 쉬는 것에 인색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을 가지기 두려워한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 나만 정체돼있다는 불안감에 오늘도 ‘생산적인 일’을 고민한다. 취업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되려는 우리는 학점에 대외활동은 물론 봉사와 노는 것까지 잘 해내야 해서다.

  힘들게 발 디딘 사회는 더 참혹하다. 얼마 전 촬영보조일을 시작한 친구 B가 한 달 동안 쉬는 날은 고작 하루. 사회초년생인 그는 “이번 주는 쉴 수 있겠지”라며 한숨 섞인 말을 뱉는다. “매일 4~5시간밖에 못 자. 나머지는 다 일하는 시간이야. 쉬는 날이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게 돼.” 친구는 피로에 종종 졸음운전을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투정부릴 수 없다. 쉬고 싶다는 말은 쉽게 열정 부족이자 부적응으로 치부된다. 모두 묵묵히 견디며 자기 일을 해낼 뿐이다. 과도한 업무와 폭언으로 세상을 떠난 tvN ‘혼술남녀’의 이한빛 피디, 콜 수를 채우지 못해 자살을 택한 19살 콜센터 직원이 바로 우리였다.

  한참을 얘기하던 중, 친구 A가 먼저 들어가 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구는 다시 내년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고, 그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힘내라는 말밖에 없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오랫동안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쩌면 친구는 할 수 있어, 힘내가 아닌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말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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