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의 관계란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 최근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혹은 상처를 준 경험이 있다면, 이청준의 <별을 보여 드립니다>를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소설은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법한 ‘진실한 관계’에 대해,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없는 깊이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소설 속 ‘그’는 끊임없이 진실한 관계를 갈망하지만, 그의 이러한 욕망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배반’ 당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졸업식에 와 줄 것을 부탁하지만, 아무도 그의 졸업식에 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고향에 내려갈 차비를 ‘나’에게 부탁하지만, 그 부탁은 외면 받는다. 세상으로부터 ‘배반’을 당한 그는 친구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영국으로 떠나기도 하지만, 고독의 연속 끝에 한국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랑하던 여자의 배신과 여전히 그에게 무심한 친구들뿐이다. 진정 끝없는 ‘배반’의 연속이다.

  세상의 배반에 결국 그가 선택한 대응방식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진실한 관계가 부재하는 세상을 떠나, 그 자리에서 항상 빛나고 있는, 그래서 절대 배반을 하지 않는 ‘별’이라는 대상에 대해, 집착과도 같은 애정을 쏟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거짓말’과 ‘도벽’을 일삼는 것이다. ‘그’는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했으며, 친구들의 집에서 어떤 값비싼 물건을 훔쳐가기보다는, 그들에게 무언가 의미가 있는 물건을 훔쳐간다. ‘아무렇게나’ 하는 ‘거짓말’과, 돈이 되지는 않지만 상대방에게 있어 꽤 소중한 것들을 가져가는 ‘도벽.’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관심 유발의 방법일 것이다. 관계 속에서 끝없는 배반만을 당한 그가, 비록 올바른 방식은 아닐지언정, 세상에게 제발 자신을 봐 달라고 외치는 마지막 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결말에서 그는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고, 자신이 꿈꾸던 ‘별’을 비추는 망원경을 수장한다. 세상의 배반에 대응하여 선택한 두 가지 방어기제를, 결말에 가서 모두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짓말과 도벽과 같은 왜곡된 형태로는, 소외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별’이 아무리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존재더라도 그것은 현실 속 ‘관계’의 문제 해결에 있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에서 상처받고 관계를 떠났던, 그리고 기형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했던 그가 다시 ‘관계’로 돌아오는 결말이라 볼 수 있는데, ‘그’의 이와 같은 선택은, 어떻게 보면 이상적일지라도, 사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언제까지나 왜곡된 방어 기제로서 문제를 덮어두기만 할 수는 없으며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는 – 아이러니하지만 - 그 속에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소연(국어교육15)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