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위한 주류 건강증진 부담금 도입을 이야기했다가, 여론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되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재정확충을 위해 서민에게 밀접한 술값이 거론된 것에 대한 국민적 감정은 좋지 않다. 최근에 체감되는 물가의 오름폭이 적지 않고, 지난 정권에서 국민 건강을 내세운 담배값 인상이 흡연률은 꺾지 못한 채 담배 가격만 올려놓은 기억이 또렷해서다.

  우리나라의 15세 이상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2015년 기준 9.1리터로 OECD 국가의 평균적 수준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20~30대의 고위험 음주경험이 높고, 여성의 고위험 음주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대학생 집단에 한정해서 보면 대학생의 평균 음주 시작 17.8세로, 우리나라 19세 이상 전체 인구의 평균 음주 시작 연령인 22.8세보다 매우 빠른 편이다. 게다가 대학가에는 주변의 권유로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경우가 여전하고, 절반 이상의 대학생이 ‘만취 음주’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수치를 일일이 들지 않더라고, 한국인의 음주량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일이다.

  술과 담배는 정부가 관리하는 ‘규제 산업’에 속한다. 두 품목에는 모두 특유의 중독성과 잠재 유해성이 있어 시장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면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기호성이 강한 상품이기에, 이들 제품에 매겨지는 세금도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요가 많은 소주·맥주의 경우 세금이 원가의 112%로, 술값의 절반이 세금인 셈이다. 현재도 세금이 높은 편인데, 여기에 ‘건강’을 이유로 ‘부담금’을 더하려는 시도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방식은 간접세 인상과 마찬가지이기에 술값 인상은 고소득층보다는 서민층에게 더 부담이 된다.

  ‘건강’을 이유로 ‘부담금’을 매긴다는 것이 교묘한 말장난에 가깝다. 음주로 인한 폐해가 한국 사회에 크다면, 개개인의 음주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슈가 된 ‘주취 감경’ 형법적 조항도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수 년 사이 술 관련 광고의 규제가 늘었다지만, 구매를 자극하지 않도록 주류 광고의 노출도 더 제한할 필요가 있다. 재정이 부족할 수도 있고, 이를 보충할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세우는 명분과 감당하는 실체가 다른 정책에 대해 국민이 알고서도 속아주는 것도 계속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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