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여름 내내 무더웠던 바람 사이로 간간히 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가 하면,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새벽을 깨우는 시간이 늦어지는 걸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면, 가본 적도 없는 저 멀리 어딘가에 곡식들이 익어가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가을은 왠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여미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시의 화자가 꼭 그런 마음일 것 같다. 그는 보지 못하는 곳 어딘가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는 모든 것들의 존재가 눈부신 아침과 같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의 존재로 인하여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을 던져준다.

  그렇게 ‘멀리서 빈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시선을 둔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성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만연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태주 시인은 한 번쯤 사소한 것들로 시선을 돌려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를 통해 오히려 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원하면서. 시인이 마지막 구절에서 던져준 것처럼, 지금 같은 가을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소한 것들로 시선을 돌리기에 적합한 시간 아닐까?

 

김주승 미디어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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