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즈음부터 좋아하게 된 가수 덕에 여고생 시절에도 하지 않던 덕질이란 것을 하나 둘 체험하는 중이다. 그 가수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공연장을 찾은 많은 팬들은 미리 설치해 놓은 부스에서 응원물품이나 굿즈를 수령해 가기도 하고 여기저기 모여 팬카페 닉네임으로 자기를 소개하며 각자의 덕력을 뽐내기도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색한 것 투성이지만 공연장의 이런 분위기는 특히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다.

  얼마 전 다녀온 블록체인 관련 포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단에서는 유명 연사가 강연을 하고 강연장 바깥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블록체인 관련 업체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업을 홍보하며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소개하며 네트워킹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블록체인이 얼마나 주목받는 분야인지 그 열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날이었다.

  지난 8월 27일 은행공동인증서비스인 뱅크사인이 출시되었다. 뱅크사인이란 블록체인의 분산원장 기술 등을 활용한 새로운 인증수단으로, 출시 당시에는 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했지만 PC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제공 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비단 금융권만이 아니라 이동통신사, 여행업계 등 각종 민간부문과 정부, 공공기관에서도 블록체인의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한 신규사업 추진계획을 앞 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블록체인 관련 뉴스를 접하다 보면 이들 중 대체 몇 개의 사업이나 제대로 살아남아 시장에 출시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이 자주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업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할 새로운 아이디어에 이를 뒷받침할 기술이 결합되어 기획되고 추진된다.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고 그에 적합한 기술을 탐색하여 실현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하지만 요즘 각 분야에서 내 놓는 신기술 관련 사업들을 보면 특정 기술을 미리 지정해 놓고 적당한 사업 아이디어를 거꾸로 끼워 넣는 듯 하여 안타깝다. 얼핏 격변하는 시대를 리드하기 위해 띄운 큰 배 같지만 실상은 홍보성 기사 한 줄이 절실한 바람 빠진 튜브 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의 방향성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애자일 프로세스(Agile Process)를 도입했다는 변명도 궁색하게 들릴 뿐이다.

  오늘도 4차 산업혁명이니, 밀레니얼 세대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니 하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실체 없는 단어들로 가득한 사업계획서들이 이 건물 저 건물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부디 그 중 절반만이라도 시장에 당당히 내 놓을 만한 의미 있는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길 바라본다.

 

<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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