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연 문과대 교수·중어중문학과

  어느덧 가을이 저문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는데, 실제로는 서점 매출이 가장 떨어지는 계절이란다. 가을 날씨가 야외활동을 하기에 좋아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필자만 해도 올가을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 별반 떠오르는 것이 없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학문의 전당인 대학까지 이래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는 독서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학문을 하는 바른 길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사색하는 일이 가장 앞자리에 있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사색하는 일의 핵심은 독서가 가장 앞자리에 있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필자는 중국 고대 명사들의 명언을 빌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낡은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다독(多讀), 정독(精讀), 복독(復讀)이 그것인데, 학문에 왕도가 없다는 말처럼 독서에도 이 낡은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있을 법하지 않다. 항간에 속독(速讀)이니 음독(音讀)이니 하면서 더러 ‘기적의 독서법’을 표방하기도 하나, 섣불리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먼저 다독의 예로 당나라의 두보(杜甫)를 살펴보자. 두보는 약 1500수의 주옥같은 시를 남겨 중국 최고 시인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어느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책을 읽어 만 권을 독파하니, 붓을 들면 마치 신들린 듯하다.” 여기서 그가 말한 ‘만 권’의 의미를 살펴보면, 유가의 경전인 <논어> 분량의 책을 16년간 매일 꾸준히 읽었다는 얘기가 된다. 작가 유시민은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에서 어휘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옳고 정확한 문장은 어휘력이 결정하고, 어휘력은 다독에 의해 증진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만 권’을 독파한 두보의 어휘력이 대단할 것이 틀림없고, 그러한 어휘력이 두보를 대시인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이어서 정독의 예로는 송나라의 소식(蘇軾)을 빼놓을 수 없다. 소식은 시 2700수와 산문 4500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글쓰기를 선보여 중국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힌다. 그는 조카사위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조언한 적이 있다. “배움에 뜻을 둔 학생은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책은 바다처럼 풍성해서 없는 것이 없으나, 사람의 힘으로는 모든 것을 다 얻지 못하고 찾고자 하는 것에 머무를 뿐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읽을 때마다 얻고자 하는 한 가지를 정해야 한다. 이런 방법이 둔해 보여도 나중에 배움이 이루어지면 각종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서 대충 알고 있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책 한 권에는 다방면의 지식이 담겨 있어서 한 번의 독서로는 다 소화하기 어려우니, 책을 읽을 때 목적을 분명히 정하고 그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책 한 권으로도 폭넓은 지식을 섭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孔子)를 통해 복독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사기>의 <공자세가>에 따르면 공자는 만년에 <주역(周易)>을 즐겨 읽어 죽간(竹簡)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 고사성어 ‘위편삼절(韋編三絶)’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공자는 무슨 까닭에서 이렇게 <주역>을 복독했을까?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에 주석을 붙인 배송지(裴松之)가 소개한 동우(董遇)의 말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한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책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 안에 담긴 심오한 뜻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김득신이란 문인이 <사기>의 <백이열전>을 10만 번 넘게 읽었다고 하는데, 가히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복독의 대가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어떤 분의 조언에 따라 ‘죽을 때까지 읽을 책 500권’을 고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500권을 채울 때까지 여러 방면의 책을 다독하고, 다 채워지면 그 500권만 정독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계속 복독해보려 한다.

 

김준연 문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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