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특유의 여백의 미학을 선보이며‘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로 불리는 이우환(67) 작가는 동양적 사유와 작품세계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화가이자 조각가, 이론가이다.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는 지난 10월 3일부터 지난달 16일까지〈이우환-만남을 찾아서(Lee Ufan-The Search for Encounter)〉전을 열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국제무대에서 동서미술의 가교역할을 해 왔던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살펴본 기회였다. 1960년대 후반의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친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전시됐다.

또한 지난 10월 4일에는 작가 이우환씨가 직접 작품과 개념을 소개하는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됐으며 23일에는 학술 심포지엄도 개최돼 그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는 거시적 안목과 예술적 사유로 문예비평가,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작가의 철학 세계를 담은 이번 전시회는 회화 35점, 조각 17점, 판화 6점, 드로잉 11점으로 총 69점의 출품작으로 구성됐다.

그는 작품 속에서 세계를 주객이원론의 대립관계로 설정해‘의식에 의해서 존재가 결정된다’고 하는 서구 근대의식을 비판했다. 동시에 나와 타자, 현실과 관념사이를 중재하면서 최소한의 예술적 개입으로 사물에 대한 아름다움과 여백의 세계를 보여 주려고 한다. 특히 사물과 사물의 관계, 장소성, 공간과 상황에 대한 관심이 집약된 조각 작품들에서는 산업화의 산물인 철판(鐵板)과 오랜 세월 자연의 흔적이 묻어 나는 돌을 하나의 장소에 배치시켜, 그 관계가 보여 주는 열린 구조에 주목하고자 했다.

조각과 함께 작가가 상호 보완적으로 꾸준히 병행해 온 회화작품은 조각작품에 비해 시간성과 신체성의 개입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색채와 형태, 구성, 이미지 등 가능한 한 회화적 요소를 배제하는 그의 작품에서 △작가의 신체적인 행위 △캔버스에 나타난 선, 점의 위치 △방향성 △붓 자국의 나타남과 사라짐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조응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유동하며 변화와 반복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작과 끝의 순환이라든가 무한, 나아가서는 나와 타자, 안과 밖,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간극을 좁히면서 진정한 만남을 찾아 나선다.

이우환의 작업은 예술가의 최소한의 개입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서구 미니멀리즘과 흡사한 형식이지만 서구 작가들과 같이 개념적 완결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신체성을 통해 자신과 대상 나아가서는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관계를 중재하는 점에서 다분히 동양적인 사유방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일정한 장소인 시간과 공간 속에 신체의 리듬과 호흡을 조절하면서 얻어진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과 함께 실재와 가상의 세계를 실험했던 그의 작업은 1970년대에는 엄격한 자기 수련과 통제의 과정을, 80년대에는 해체적인 분방함을 거친다. 그 후 1990년대에는 아주 절제된 공간성으로 회귀한다. 이 30여 년 간의 궤적은 그의 예술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호흡하는 생성의 장임을 다시 한번 역설해 주었다.

1967년 도쿄 사토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이우환은 전위적 예술활동을 추구하면서 1968년경부터‘모노하 운동’을 이끌었으며 창작과 비평에 있어서도 국제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모노하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 나타난 미술경향으로 물건을 거의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과 이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당시 한국의 전위운동과 단색주의 회화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비평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1971년 파리비엔날레 참여 이후 주기적으로 서구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구미에서 열린 수많은 기획전과 국제미술전에도 참여해왔다. 또한 한국, 일본 외에도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미술관, 파리 주드뽐 미술관 등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졌고 유네스코 미술상(파리·2000), 호암상(한국·2001), 세계문화상(일본·2001)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02년 <호주 퍼시픽 트리엔날레>에서는 백남준, 구사마 야오이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 작가 3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우환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현재 도쿄 다마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우환씨는 백남준씨처럼 대중적 입지가 굳은 작가는 아니지만 이번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애호가들에게 즐기면서 천천히 감상하는 자리를 제공했다”며 삼성문화재단 홍보팀 박민선 선임은 이번 전시를 평가한다. 국내 전시 사상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대규모로 열린 이번 회고전을 통해 이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의 작품세계가 관객들에게 한 걸음 다가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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