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버린 기억들, 기억하고 싶은 장소들, 보고싶은 사람들... 살다가 문득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다. 어떻게든 머릿속에 떠올려 보는 것도 좋지만, 생각나는 것들을 서툴게라도 그려보면 그리움이 조금은 사그라들기도 한다. 서툰 솜씨도 나만의 작품이 되는 곳, 성신여대 그림카페 ‘그리기 좋은 날’로 발길을 옮겨보자.

  성신여대입구역과 이어지는 동소문로 번화가 사이사이, 수많은 골목들 중 이름 모를 한 틈으로 접어들자 소음을 뒤로하고 거짓말처럼 침묵이 찾아온다. 어두운 골목을 잠시 거닐면 깜빡이는 조명 속에서 캘리그래피로 멋을 낸 ‘그리기 좋은 날’ 카페 간판이 반긴다.

  ‘그리기 좋은 날’은 커피와 차가 아닌 ‘그림’을 선사하는 카페다. 잔 안에 담긴 무언가를 마시는 대신, 손에 흙과 물감을 묻혀가며 도자기 잔 위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흰 배경 위에 그리다 보면, 넓어서 막막했던 공간들은 어느새 서툰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림작가인 배성연(여·46) 사장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이런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남편이었어요. ‘그림은 어렵다’, ‘그림은 힘들다’는 생각을 바꾸고 싶었죠.”

  도자기 잔과 그림의 만남은 매일 사용하는 물건에 순간의 추억을 불어넣는다. 배 사장도 도자기라는 대상의 실용성을 강조한다. “그냥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벽 위에 올려두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순간에 의미를 불어넣고 싶어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방향으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배 사장은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길 바란다. “‘그리기 좋은 날’이라고 이름을 지은 건 꼭 그림을 그려서 좋다기보단 무엇을 하든 그날그날이 좋게 그려지길 바란다는 바람이었어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그리기 좋은 날의 문을 두드려보길. 그래서 당신의 매일매일이 더욱 아름답게 그려지길.

 

전남혁 기자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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