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보고자 지난 목요일 극장을 찾았다. 13년 만의 재개봉이다. 평일 낮시간임에도 상영관은 영화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많이 차 있었다. 영화는 개봉 당시(영화진흥위원회 기준)471298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칸 영화제서 22분간 기립박수를 받은 명성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그 명성이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 다다르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영화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셰이프 오브 워터> 등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재개봉을 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생겨났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돌풍으로 '스크린 독과점'이 화두다. 이것이 어제오늘의 논란은 아니다. 2016년 도종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포함해 현재 4개의 관련 법안이 의회에 계류 중이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멀티플렉스에서 같은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는 점에선 4개 법안 모두 동일하다. 극장에서 한 가지 영화를 주야장천 상영해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 영화계, 시민사회가 입 모아 말하듯 스크린 독과점은 분명 해결돼야 할 문제다.

  그렇지만 스크린 개수 제한이 장기적 관점에서 영화 다양성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여러 종류의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한다 해도 하나의 영화만이 선택을 받는다면, 규제의 이유는 사라진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만드는데 약 35600만 달러가 들었다고 알려졌다. 천문학적 액수와 함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장장 11년간 준비됐다. 원작의 만화는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쯤 되면 1000만이 넘는 관객에게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선택받은 것이 납득간다. 과연 상영관에서 <어벤져스: 엔드게임> 상영 스크린에 제한을 두었을 때 더 적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택했을까. 그리고 이들은 대신에 다른 영화를 보려 했을까.

  재개봉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극장가의 판로는 관객이 결정한다. 지난 겨울엔 개봉 20년만에 <트루먼 쇼>가 재개봉했다. 관객이 원하면 상영되지 않던 영화도 다시 상영될 수 있다. 멀티플렉스라고 수요·공급 논리를 무시하진 않는다. 스크린은 생각보다 유연하다.

 

이현수 기자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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