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6111명의 인재들을 사회로 배출하는 제97회 졸업식을 갖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인생 법칙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동안 각별히 정들었던 여러분들을 안암의 동산에서 떠나보내는 마음은 참으로 아쉽고 서운합니다. 그러나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임을 상기하면서 석별의 아픔보다는 새 출발의 감격으로 오늘 졸업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수 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최고의 상아탑에서 학사와 석사 그리고 박사 등의 자랑스러운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형설지공으로 쌓아 올린 오늘의 이 결실에 대해 동료 교수 및 교직원과 함께 아낌없는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오늘의 이런 영광스런 자리가 있기까지 졸업생들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학부모님들의 헌신에 대해서는 특히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고려대학교는 모든 민족이 벽돌을 한 장 한 장씩 쌓아올려 만든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장학금과 건축기금 출연 등 물심양면으로 동참해주신 모든 국민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이러한 정성이 있었기에 고려대학교는 세계100대 대학 진입을 눈앞에 둔 명문으로 거듭났으며 오늘 이렇게 훌륭하고 자랑스런 석학들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도덕이 타락하고 질서와 가치관이 흔들리며 부정부패는 최고조에 달한 듯합니다. 국민들은 사분오열 찢어져 서로 반목질시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는 연속적(連續的)이 아니라 단속적(斷續的)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어떤 계기를 맞으면 돌발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격변기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개인은 물론 국가나 인류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사에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의 시대 그 한 복판에 있습니다.

세상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변화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서로 대립하고 서로 싸우는 데에만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세기 전을 회고해 봅시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앵글로 섹슨 세력들이 제국주의로 무장하여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을 추진할 때 우리의 선조들은 세계 정세에는 개의치 않고  파벌다툼만 벌이다 결국은 국권을 강탈당했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운의 역사는 반드시 반복됩니다. 오늘날 IT를 중심으로 한 정보혁명은 산업혁명보다 수십 수백 배 더 큰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동서냉전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가고 경제를 중심으로 한 국제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시기를 잘못 활용하면 백년 전에 당한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처참한 운명을 맞이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교육을 통해 난국을 극복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교육 구국의 본고장입니다. 암울했던 일제시대에도 민족의 이념을 개발하고 발전시켰으며 민족 지도자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했습니다. 해방직후 좌우 대립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고대인들이 나서 대화합을 이룬 일은 근대사에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독재정권에는 분연히 대항해 민주화를 이뤘으며 개발 연대에는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들을 이 혼탁한 세상에 내보내는 스승들의 마음은 걱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타락한 사회에서 고통당할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차마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여러분들은 결코 고통에 쓰러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오히려 사회부조리를 일소하면서 흩어진 국민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격변하는 국제정세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우리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변화하는 역사의 주인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시야를 세계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이미 영어의 공용화와 세계로의 열린 대학이라는 좌표를 설정하고 과감한 국제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이 정신을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가기 원합니다. 우리는 민족의 대학입니다. 순수하게 민족의 힘으로 세워진 최초의 민립대학이며 지금 이순간에도 민족에 의해 운영되고 민족을 위해 기여하는 민족 최고의 대학입니다. 문제는 방법론입니다. 민족에만 안주하면 민족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민족의 발전과 장래를 위해 세계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세계 무대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 민족을 보전할 수 없습니다. 세계로 세계로 그리고 또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아울러 도덕적 인간이 되어주기를 기원합니다. 세속적인 성공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속적 성공만으로는 영원한 만족이 없습니다. 과정의 정의가 있어야만 결과의 정의도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타락한 풍조를 고치기위해서는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여러분들이 상아탑에서 배웠던 자유 정의 진리의 이상을 현실에서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남을 우선 배려하는 따뜻한 인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학 평판조사에 따르면 우리 고려대학교는 항상 1등입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이 사회에서 도덕적 인간의 선례를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전통을 더욱 발전 시켜 우리 사회를 훈훈하면서도 한점 공해도 없는 청정(淸淨)사회로 만들어 주실 것을 간곡하게 고대합니다.

자랑스런 졸업생 여러분,
졸업은 마무리가 아닙니다. 몸은 비록 석탑의 광장을 떠나지만 마음은 계속 연구하고 창조하는 자세를 지녀주십시오.  탐구적 자세를 잃으면 그 순간 지식인은 수명이 끝납니다.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새 지식의 첨단과 함께 하십시오. 필요하다면 모교의 지적자산과 시설을 적극 활용하십시오.

이제 헤어져야하는 석별의 시간입니다. 이 안암 동산은 여러분의 인생역사가 담겨있는 곳입니다. 가장 중요한 시절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며 숱한 사연을 남긴 장소입니다. 다사다난했던 추억들과 더불어 모교에 대한 사랑을 가슴깊이 간직하면서 고려대학교의 영원무구한 발전을 기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직원들도 다시 한번 각오를 가다듬어 여러분의 족적이 남아있는 고려대학교를 다방면에서 세계 최정상에 올리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내년은 우리 고려대학교가  민족 사학 최초로 개교100주년을 맞습니다. 고대 100년은 바로 우리의 근대사이며 여러분은 그 역사의 주역입니다. 근대사의 주역으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갖고 각자 나아가는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로 성장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인생 전도에 항상 축복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2월 25일
 고려대학교 총장 어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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