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에 짧은 머리, 다부진 체격에 씩씩한 목소리까지. 외모만으로 군인의 요건을 따져보자면 그녀는 최적의 요건을 갖추었던 것 같다. ‘청년실업’의 악령이 졸업생들의 머리를 짓누렀던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라며 여군장교를 선택했다. 그녀는 지금쯤 지방 어느 도시에서 흙묻은 전투복을 입고 언땅을 나뒹굴고 있을지 모른다. 그 대가로 그녀는 직업군인이라는 ‘평생직업’을 얻었다.
  
지난해 필자가 강의를 맡았던 대학에서 한 학기 내내 강의를 들었던 어느 4학년 학생의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에 눈빛을 반짝이며 선망의 눈길을 보내던 다른 수강생들의 표정을 지금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군사독재가 숨을 거두기 직전 막바지 기승을 부릴 무렵에 대학을 다닌 탓일까. 학군단을 지원한 동료들에 대한 시선조차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던 상황에서 대학 4학년을 마치고 학사장교로 ‘취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청년실업률 8.8%’라는 전쟁과 같은 상황 앞에 떨고 있는 4학년 학생들 앞에서 이런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었다. 나 혼자만의 ‘발칙한’ 상상으로 그칠 뿐이었다.

하지만 극심한 경기 침체와 취약한 고용 시장은 졸업생들에게 또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도 알았으면 한다. IMF를 경험한 대학생들이 너도나도 9백점 이상의 토익점수를 내놓는 것을 보면서 놀고 먹다 졸업한 어정쩡한 선배들은 이제 영어와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어려웠던 시절이 한두번인가. 여러분보다 몇 년 앞서 교문을 나선 선배들 중에는 IMF 한파를 피해 대학원으로 ‘피신’했다가 몇 년 뒤 그보다 더 혹독한 취업난을 맞았던 ‘비운의 91학번’도 있다. 수능시험을 두 번이나 치러놓고도 방위병 제도 폐지 때문에 간발의 차이로 현역으로 끌려갔던 ‘운명의 94학번’도 있다. 여러분들에게 ‘이태백’이니 ‘삼팔선’이니 하는 유산만 남겨놓은 부끄러운 선배들 중에서는 마흔 언저리가 되서도 늘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철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졸업은 또다른 출발’이라는 고래의 명언을 ‘덕담’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면 그만 아닌가.

성기영(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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