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봄이 오기 시작할 때다. 교정은 떠나는 이들의 못다 쓴 추억들로 수런거리는 듯 하다. 이제 졸업을 하는 학우들은 다시 새로운 삶을 위한 건널목에 섰다. 신호가 파란 불인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은 빨간 불인 이들도 많을 것이다. 잠깐 잊을라치면 언론들이 한 번 더 상기시켜주는 청년실업이라는 빨간 불은 쉬이 바뀌지 않고 있다.

빨간 불은 멈추라는 신호다. 무리하게 길을 건너다가는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삶의 건널목에서 과연 신호를 잘 지켰던가. 늘 무언가에 떠밀려 인생이 주는 빨간 신호를 무시한 채 살지는 않았던가. 거리의 건널목에서 사고로 육신을 다치듯, 삶의 건널목에서는 사고로 영혼을 다친다. 잠시 바쁜 걸음 멈추고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 나의 꿈은 안전한가.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은 지켜지고 있는가. 나를 사랑해준 이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영혼에 깁스를 하고 코뿔소 마냥 달려가는 사람과 가슴에 심은 자신의 나무를 차분히 가꾸어 가는 사람. 둘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한 가지 참고사항은 삶이 우리에게 빨간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도 가정도 사람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출 때 비로소 그 길을 두루 잘 볼 수 있다. 넓은 시야로 생의 풍경들을 살펴보자. 마음의 렌즈로 줌인, 줌아웃을 모두 활용해 삶의 청사진을 찍도록 하자. 원경(遠境)과 근경(近境)이 함께 할 때 피사체를 더 잘 알 수 있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취업에는 단순히 지금 돈을 벌 일을 구한다는 의미도 있겠다. 근경이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업을 취한다’ 라는 시각에서 ‘내가 이 생에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갗 라는 문제에 대한 자기만의 결론을 내려야할 필요도 있다. 그것은 원경을 그려보는 일이다. 스케치를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은 추상화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근경만 본다면 당장은 명쾌할지 몰라도 장기적인 인생의 그림은 생의 한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가는 건널목에 섰다는 것은 축복할 일이다.

우리는 그만큼 살아온 것이다. 살아왔다는 것은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으로 우리는 모두 훌륭하다. 졸업하는 학우들의 앞날에 봄빛 같은 청신호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장명진(문과대 국문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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