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과거>
장승리

  과거는 현재와 멀리 있지 않다. 지나간 과거는 초 단위로 갱신되기 때문이다. “네가 내게 온 건 어제 일 같고, 네가 나를 떠난 건 아주 오래전 일 같다.”는 장승리의 말처럼, ‘반과거라는 단어도 이런 인식 안에서 탄생한 것 같다. 반절짜리 과거는 과거처럼 아주 멀리 있지 않지만, 현재와 가까워질 수는 없다. 이미 과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는 과거에게 딱 반절만 내주고, 완전히 과거는 아닌 새로운 이름, ‘반과거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물리적으로는 지나갔지만, 심리적으로는 영원히 지나갈 수 없는 현재의 상태, 그것이 반과거이다.

  장승리에게 반과거는 현재로 데려오고 싶은 아픈 사랑이다. 지나간 이에게 보내는 절절하지만 담담한 목소리가 화자에게서 들려온다. ‘투우에서는 너의 침묵이/나를 몬다”, “너의 침묵을/나는 몬다처럼 주체할 수 없는 침묵을 다스리려 애쓰는 화자가 등장한다. 빨간 천을 흔들어 소를 몰아 죽이는 경기인 투우에서, 투우사는 더 많이 소를 약 올려야 한다. 그러나 화자는 인내하는 투우사이다. 조금씩 침묵에게 다가간다. 화자는 응답하지 않는 너와 너의 침묵, 이를 넘어서는 그냥 침묵에게 점점 지쳐버린다. “수신자가 어떻게 순식간에 침입자가 될 수 있는지같은 행에서는 역으로 침묵에게 꿰뚫리는 불행한 화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결국 화자는 살기 위해 침묵을 죽인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지만 사실 승자는 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시는 현재가 반과거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반과거>에서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반과거로 가고 싶은 화자가 내면의 싸움을 하고 있다. 반과거를 보내주자는 목소리와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번갈아 나타난다. “모든 아침은/가장 오래된 아침이야”,“절정의 목련 앞에선/늦었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멈춘 게 아니라/길이 멈춘 거야라며 반과거를 과거로 보내자는 화자는 이제 지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희망을/버리지 마”, “다른 봄이/코앞이야”, “그 길 걷는 일을/멈출 수 없어라며 반과거를 현재로 데려오는 화자는 다른 화자를 격려하며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분열된 두 화자는 언뜻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연에 이르면 결국 합치된다. “그 길 걷는 일을/멈출 수 없어라는 목소리는 사실 두 화자 모두의 목소리이다. 반과거는 더 오래 존재 할 것이다.

  <반과거>는 이미 가버린 이를 잊지 못하여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사람의 애끓는 고백이다. 잊자니 정말 영영 과거가 될 것 같고, 잊지 않자니 너무나도 아픈 이 상황에서 장승리는 반과거라는 새로운 세계를 건넨다. 그건 반절짜리 과거이므로, 이곳,이 시간에서 화자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잊지 말고 기억하기. 잠시 도망쳐보기. 그러다 되돌아오기. 다만 반과거를 살아가기. 장승리가 할 수 있는 건 반과거라는 시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여기서 마음껏 사랑하시라고.

 

글 | 류다운(대학원 석사과정·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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