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에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전공하기 시작했을 때였던 듯하다. 사회적으로 치열한 1980년대 후반 학번이던 언니와 오빠가 내게 충고를 했던 게. ‘현실을 모르는 온실 속의 화초이기만 하면 음·미대 깡통이란 소리를 면할 수 없다라고 했던가? 당시엔 그 이야기가 꽤 고깝게 들렸지만, 그 충고가 마음에 담겼는지 대학교를 입학한 1991년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곧장 철학동아리를 찾아갔다. 나름 야무지게 동아리 가입 의사를 밝혔던 나는 그날 여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곶 됴코 여름하나니의 구절처럼 결실을 보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선배가 작명해 준 것이다. (‘작명식은 나중에 알고 보니 학내보안을 철저히 해야 했던 80년대의 동아리 운영방식이었고,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도 당시 동아리 친구들과 선배들은 서로의 본명을 모른다.)

  그해 4월 독다방에서 선배들이 사주는 커피와 사과잼 곁들인 모닝빵을 먹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선배들이 웅성웅성하더니 마저 먹고 가라며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어리둥절했지만 맛나게 먹고 다시 학교로 향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간신히 교문을 통과하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잊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다. 바로 한 시간 전에 독다방에서 커피를 사준 천상 착하던 순둥이 동아리 오빠가 손수건 마스크를 쓰고 불붙은 소주병을 머리 위로 휘휘 돌려 온 힘을 다해 던지는 장면이었다. 충격적인 그 장면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바로 그날 나랑 같은 신입생이 전경들에게 맞아서 죽었단다. 그 날부터였다. 1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철학 동아리방으로 갔다. 평범한 음악 전공자였다면 차마 알지 못했을 인문학과 철학 공부를 한 학기 남짓이나마 빡세게 했고,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삶의 체험을 이때 정말 많이 했다. 너무나 치열하고 지독하게 고민했던 1학년 1학기는 대학생활에서뿐 아니라 음악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이자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때의 모든 장면과 사람들, 사건들, 책의 내용, 음악들, 그리고 냄새까지도 모두 기억에 남아있다.

  원래 음악 전공자로서 음악대학의 에피소드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는데 간신히 찾은 오래된 대학 입학식 사진을 보자마자 당시의 뜨거웠던 기억과 감정이 떠올라 글의 방향이 바뀌었다. 대입을 위해 오랜 시간 공부만하다 이제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새로운 삶과 희망을 꿈꾸던 우리 신입생들. 전 세계적인 위기인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입학식도 못 하고 개강도 늦추어져서 매우 아쉽겠지만, 그대들은 이제 스무 살, 신입생. 이처럼 강한 면역력이 또 있을까. 새로운 환경의 삶을 시작하는 학생들의 젊음과 패기를 벅찬 가슴으로 축복하며 잠시나마 온라인강의 제작의 고충을 잊어본다.

 

류경선(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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