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 가로막는 소멸시효,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배상 가로막는 소멸시효,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 김보성 기자
  • 승인 2020.03.3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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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 위해 과거사 청산해야" 

전원 배상은 국가 재정에도 부담

  195129일부터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은 민간인 720여 명을 공비로 몰아 학살했다.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거창 사건)이다. 거창 출신인 신중목 2대 국회의원의 폭로로 19511216일 재판이 열렸다. 법원은 작전을 지시한 9연대 연대장 오익경 대령 무기징역, 부대를 통솔한 3대대 대대장 한동석 소령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오 대령은 다음 해 9, 한 소령은 16개월 뒤 풀려나 군으로 돌아왔다.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죽음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국회는 거창 사건 특별법을 제정했다. 민간인 학살 문제로 제정된 최초의 특별법이었다. 하지만 배상에 관한 내용은 빠졌다. 피해자로 인정받았는데도 돈을 받기 위해선 개별적으로 국가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200865, 대법원에서 거창 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재판이 열렸다. 판결은 원고 패소였다. 소멸시효 때문이었다. 사건을 인지한 지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유족들은 배상을 받지 못했다.

  민법상 소멸시효란, 피해가 발생한 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다. 주관적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피해를 인지하고 3, 객관적 소멸시효는 사건이 발생한 뒤 10년이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경우 객관적 소멸시효는 5년으로 줄어든다.

  2008년 당시 거창 사건 유족들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판결 이후 3년이 지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될 때까지 피고인 국가가 원고의 권리 행사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 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 사유도 없었다고 했다. 유족들이 피해 사실을 인지한 시점을 책임자들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 19511216일부터라고 본 것이다. 이 시점부터 3년이 지난 19541216일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족들은 패소했다.

  2009년 울산 보도연맹 사건의 유족들이 1심에서 승소하기 전까지, 많은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들은 ‘5이란 객관적 소멸시효를 충족하지 못했기에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연전연패했다. 울산 보도연맹 사건 1심은 이례적으로 재판부가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 남용이라며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아 승소할 수 있었다.

  현재 민간인 학살사건의 경우 객관적 소멸시효는 적용받지 않는다. 20116, 울산보도연맹 사건을 두고 대법원이 국가가 진상을 은폐했음에도 원고들이 소를 뒤늦게 제기했다는 이유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부터다. 2018830, 헌법재판소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민법상 소멸시효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일부 위헌이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인지한 시점부터 3년이란 주관적 소멸시효는 여전히 적용된다. 거창 사건 인지 시점의 기준은 과거사위원회가 진상규명 판정을 내린 날이다. 과거사위원회가 종료된지 10년이 지났다. 소멸시효는 여전히 유족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재정부담 때문에 특별법 거부되기도

  법조계에선 소멸시효가 존재하는 한 특별법 외에는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줄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조영선 변호사는 과거사위원회가 문을 닫은 지 10년이 된 상황에서 주관적 소멸시효 3년을 적용하면 특별법 등 입법을 통한 배상 외에는 사실상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국가에 직접배상을 요구해야하는 현행 방식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지향 이상희 변호사는 소송은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과 부인하는 사람 사이에 국가란 제3자가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라며 국가가 가해를 저질렀고 국가기구인 과거사위가 가해 사실을 인정했는데 국가가 다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현 배상방식에 부담을 느껴 소송을 포기하는 유족도 많다. 거창 사건의 유족인 이성열(·67) 씨는 2008년 소송에서 빠졌다. 그는 산골 벽지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이 돈이 어딨어서 그 긴 시간 동안 변호사비를 부담해가며 소송을 진행하느냐며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현재 국회에는 거창 사건 피해자들의 배상을 골자로 한 특별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전망은 어둡다. 피해자가 너무 많아 모두에게 배상을 해주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거창 사건 피해자 배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20043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해 시행되지 못하기도 했다.

  1995, 거창 사건을 추모하는 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유족들은 줄곧 배상을 포함해달라고 외쳤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배상을 포함한 특별법이 올라갔고 폐기됐다. 유족들은 오랜 시간 배상 문제로 정부와 싸웠다며 배상을 포함한 특별법은 70년 된 숙원이라고 말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과거를 회고하고 반성하고 쌓여있는 문제를 해결하며 민주주의가 자란다과거사 청산 없는 미래는 불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 김보성기자 greentea@

인포그래픽│윤지수기자 ch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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