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쌀롱] 불멸의 영웅조차 지치게 하는 세상
[타이거쌀롱] 불멸의 영웅조차 지치게 하는 세상
  • 고대신문
  • 승인 2020.07.2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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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그런 척, 마치 영화는 예술적인 것만 봐야 하는 척 하는 영화평론가들조차 은근히 어서 올라 오기(공개되기)’를 기대했던 넷플릭스 영화 <올드 가드, The Old Guard>는 일단 그 모든 것이 샬리즈 테론때문인 작품이다. 그녀는 이 영화 때문에 온 몸을 근육질로 만들었는데 그 덕인지, 혹은 그 탓인지 얼굴 살도 엄청 빠지게 됐다. 그래서 다소 나이를 먹어 보이고(1975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마흔여섯이다.) 비교적 큰 선글래스가 너무나 어울리는 얼굴이 됐다. 마치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가 <레인 맨, 1988>에서 세상에서 선글래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미남 배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너무 살을 빼서인지 샬리즈 테론은 이 <올드 가드> 외에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 선언, Bombshell>에서는 처음엔 미처 알아 보지 못할 정도다. 그녀는 <밤쉘>에서 폭스뉴스TV의 간판 앵커 매긴 켈리로 나오고 회장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일을 측면 지원한다. 이 영화는 우리사회에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회사건탓에 오히려 마케팅 과정에서 묻히고 말았다. 영화가 현실과 너무 붙게 되면사람들은 역으로 약간 거부감을 갖게 마련이다.

  <올드 가드> 얘기하다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아무튼 여기서 샬리즈 테론은 2015년에 발표된 조지 밀러의 기념비적인 작품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2017년작으로 주류 액션영화로서 영화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토믹 블론드>에 이어 연속해서 자신이야 말로 뉴 노멀 시대, 혹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있어 유일한 여전사배우임을 입증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작금의 할리우드는 액션의 합을 짜는데 있어 이게 결코 눈속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요량으로 원 씬 원 테이크(one scene, ond take)로 길게 찍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샬리즈 스스로 점점 더 그 강도와 난이도를 높여 나감으로써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테이큰>의 리암 니슨은 거기에 비해 이제 너무 할아버지 액션을 선보이고 있고 <이퀄라이저>의 댄즐 워싱턴의 액션은 다소 전통적이며,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가 다분히 선구적이긴 하나 샬리즈 테론만큼 리얼하지 않고 오히려 다소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생존과 생계를 위해 액션 시리즈를 개발하는데(브루스 윌리스의 <다이 하드>가 시조 격이다.) 여기에 여성 액션이 등장하기란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그런 점에서 샬리즈 테론의 역할이야 말로 이제 현대 상업영화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올드 가드> 얘기를 하려다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긴 했는데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죽지 않는, 불멸(不滅)의 전사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들이 세상의 음모에 맞서 싸우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진실로 말도 안되는 황당한 설정이지만 영화라고 하는 게 실로 오묘한 것은 보다 보면 모든 게 다 그럴 듯 해 보이고 심지어 정말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실현의 욕망까지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상엔 악당이 얼마나 많은데 천 년 이상을 살아 오면서 사람들이 큰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들의 음모에 맞서 사건을 해결해 주는 영웅이 있다면, 그리고 있어 왔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올드하긴 해도 우리를 가드해 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안심과 평화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를 통한 대체 욕구이자 대리 만족의 효과인 셈이다.

  하지만 그건 다 헛소리다. <올드 가드>는 그보다 영화 속에서 샬리즈 테론이 보여 주는 허무와 좌절감의 모습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진짜는 바로 그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샬리즈 테론은 너무 지쳤다. 자신이 불멸의 존재라는 것조차 더 이상 자랑스럽지도, 무엇보다 보람이 있지도 않다. 그녀는 서서히 유한의 삶으로 귀속되기를 원한다. 그녀는 자신을 보스라고 부르는 세 명의 남자 부하들(그들도 기본적으로 3,4백년을 살아 온 인간들이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어. 이 따위 인간들, 될 대로 되라지! 지긋지긋해! 이제 난 정말 그만 두겠어.”

  그런데 마침, 자신의 뒤를 이을지도 모를, 또 다른 불멸의 존재인, 어린 여성의 출현이 그녀의 은퇴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올드 가드>의 여전사는 한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열심히세상을 구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점점 믿기가 힘들어졌고 지금은 거의 포기 상태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됐다. 세상은 결코나아지지 않으며 사람들은 절대로바뀌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꾸 ()=자신과 같은 불멸의 영웅탓만 한다. 인간의 그 위악성과 나약함은 진실로 징그러울 정도라고, 영화 속 샬리즈 테론은 생각하며 결국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 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이 할리우드 식의 뻔한 액션 영화 따위가 종국적으로 던져 놓는다는 것이야 말로 <올드 가드>를 볼 만한 액션영화로 만든다. 그렇고 그런 스토리임에도 끝까지 이 영화를 보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눈이 부실만큼의 액션 씬을 짜고 연출한 감독도 지나 프린스 바우더우드 라는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시대의 징표가 읽힌다. 샬리즈 테론 외에도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치웨텔 에지오포 같은 배우도 외워 두면 좋다.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베트남 액션영화인 <분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응오 탄 반이 나온다. 이 정도 배우는 알아야 어디 가서 영화에 대해 아는 척 좀 할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뛰어난 점은 극장에서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던 베트남 영화, 벨기에 영화, 아이슬란드 영화, 브라질 영화 등등 이른바 다양성을 순식간에 회복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영어 대사가 아닌 자국의 언어로 된 수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실로 새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문물은 늘 명암이 있는 법이다. 넷플릭스의 명()은 바로 그 다양한 문화로의 초대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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