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헷갈린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운 좋게 취업을 했다.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며칠은 아무 생각 없이 좋았다. 그러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채용 대상이 졸업 예정자 또는 졸업자였다며 어떻게든 2학기에 졸업을 해야 된단다. 졸업을 하지 못하면 입사가 취소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졸업까진 이수 학점이 많이 남았는데, 출근은 또 9월부터 바로 하란다. 수강 신청한 과목마다 첫 수업에 들어가 교수님들께 사정을 설명하고 이수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이후 수업에 출석하지 못했다. 리포트로 시험을 대체했고, 기억으로는 대부분 C학점을 받고 무사히 졸업했다.

  이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취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업 출석을 하지 않고, 시험도 리포트로 대체하다니. 이런 학생에게는 원칙대로 F 학점을 주는 게 공정한 거 아닐까. 당시에는 아무 문제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관행이자 미덕이라고까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공정했다고 자신 있게는 말 못하겠다. 같은 수업을 수강했던 다른 학생들이 뒤에서 특혜라고 수군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좋은 말이다. ‘저녁이 있는 삶만큼이나 뇌리에 꽂혔던 문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정이란 말, 너무 어렵다. 구체적인 사안마다 헷갈린다. 한 장관의 아들이 군 복무 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 이거 어떻게 봐야할까. 아프면 당연히 병가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하다가도 모든 병사들에게 이런 조치가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면 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겠다. 검찰이 수사에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지만, 지금도 나는 공정했다고는 못하겠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이슈, 그리고 한 동안 매스컴을 장식했던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문제도 처음엔 공정하다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 걸음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각각의 가치가 충돌한다. 역시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부동산으로 얻은 불로소득, 이것도 공정한 건지 불공정한 건지 잘 모르겠다. 불로소득이야 옳지 못하다고 치더라도, 마냥 불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주변에서 본인의 아파트 가격이 2배 올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그저 배가 아플 뿐이다.

  헷갈리면 제일 먼저 사전을 펴본다. 공정의 사전적 정의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지지 않고 고르다는 공평과 올바름. 내가 볼 땐 공정, 남이 볼 땐 불공정, 이거 당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공정이란 단어의 뜻을 곱씹어 볼수록 공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만 드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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