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돌아오는 마감일은 늘 전쟁이다. 수정 기사까지 올리고 정신을 차려 보면 새벽 4시 반, 허물어진 금요일과 토요일의 경계는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편집국에는 여태껏 기사를 쓰는 기자들과 낚시 의자에서 불편하게 잠든 기자들이 엉켜있다. 고요한 새벽, 안암을 밝히는 청산MK문화관 6층에는 멋있고도 안쓰러운 청춘의 냄새가 가득하다.

  신문을 만들다가 지칠 때면, 이 과정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벌써 1926호다. 얼마나 무수한 고민과 한숨들이 1900호수가 넘는 지면을 거쳐갔을까. 문득 그 치열한 장면들이 궁금해져서, 고대신문 웹페이지에서 과거 지면들을 찾았다.

  옛날 신문을 읽는 것은 정말 재밌다. 시간순으로 신문들을 훑다 보니 어느새 기사에는 한자가 줄어들었고, 기자의 이름 옆에는 이메일 아이디가 붙어있다. 클릭 한 번에 1980년 대학 휴교령부터 1997IMF의 시작, 2002년 월드컵 현장으로 시간 여행을 했다. 멀찍이서 전해 듣던 이야기를 누군가는 직접 겪고 전달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허한 마음이 들었다. 굵직한 사건들을 다룰 수 있는 용기, 지면으로도 느껴지는 뜨거운 단합이 부러웠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코로나까지 겹친 상황에서, 그런 뜨거움을 다시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475세대(40대의 나이에, 7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5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굶주리던 우리 경제를 저 바닥에서 이만큼이나 끌어올렸다고, 위안 삼을 만한 일이라도 있다. 386세대(30대의 나이에, 80년대 대학에 다니며, 60년대에 태어나 학생운동,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는 그래도 옳다고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언덕과 공감대가 있었다. 그에 비해 20대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200157일 발행된 1400<종단횡단> ‘공부 못한다고 꾸짖지 마라의 한 구절이다. 그들이 불평하던 20대를 20년 뒤에 부러워하는 후배가 있다고 전해준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무언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그런가, 과거의 영광은 지금과 비교해보면 꽤 커 보인다. 마치 코로나 이전의 대학생활을 부러워하며 새내기 1년을 보낸 나처럼 말이다. 과거를 질투하는 일이 당연하다면, 언젠가 또 과거가 될 현재를 잘 살아내야 한다. 미래의 누군가는 내가 만든 한숨 섞인 지면들을 보며 지난날의 영광이라 여길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새삼 위로가 됐다.

  다시, 전쟁 같은 마감이다. 힘을 내자.

 

성수민 문화부장 sky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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