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일궈낸 초록빛 생명, 시민이 가꾸는 공공정원 확산
손으로 일궈낸 초록빛 생명, 시민이 가꾸는 공공정원 확산
  • 박다원 기자
  • 승인 2021.09.05 2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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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정원을 거닐다

시민이 함께 해야 비로소 완성돼

정원에서 목도하는 내면의 치유

시민참여형부터 환경재생정원까지

  도시의 주거지가 고밀화되면서 전 지구적으로 탄소저감과 환경 보존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원과 반려식물에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너도나도 플랜테리어를 시도하고 홈가드닝이 유행하는 등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식물에 내어주는 시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오늘날 한 뼘짜리 정원이라도 자신만의 정원을 마련하는 꿈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다. 조경진(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는 이러한 수요가 아파트 문화의 주거양식과 밀접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70, 80년대 이후 아파트가 생활주거를 지배하면서 이전에 단독주택지마다 있었던 정원문화가 거의 소멸하게 됐다반려식물과 정원에 대한 갈망은 생활 근처에서 자연을 느낄 공간을 찾는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 속 공공정원이 증가하면서 공동 가드닝 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공동 가드닝은 현대 사회 속 공동체가 같은 구역 내에서 정원을 가꾸며 자연을 매개로 자연스레 소통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가드닝 교육을 받은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정원관리를 하고, 자발적으로 봉사단을 꾸려 정원을 조성하고 관리하기도 한다. 정원마다 조성과정과 콘셉트도 달라, 각양각색의 공원을 보는 묘미도 쏠쏠하다. 그중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가꿔진 서울숲 오소정원, 환경재생으로 조성된 선유도공원 속 테마정원,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과 요양원 노인을 위해 조성된 모현센터의 기부 정원은 저마다의 사연과 기억을 가졌다. 어느 늦여름의 정원 세 곳을 직접 찾았다.

 

시민들의 웃음, 서울숲 오소정원

 

오소정원을 가꾸는 시민정원사들의 모습
보라빛이 찬란한 멍하니정원
붉은 색으로 조성한 빨간 머리 앤의 사계정원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의 넓은 주차장을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끝자락에 키가 큰 관목들과 화사한 꽃들이 무성한 정원 하나가 눈에 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 정원은 바로 서울숲의 오소정원이다. ‘오소정원의 이름은 내가 웃는다라는 뜻으로, 정원을 가꾸는 일 자체가 즐겁다는 시민정원사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우리말로 오소는 누구든지 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소정원 조성을 총괄한 김장훈 전문정원사는 정원을 가꾸는 것은 내가 기쁘고, 더불어 즐거워지는 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오소정원은 쓰담쓰담정원’, ‘멍하니정원’, ‘초심정원’, ‘빨간 머리 앤의 사계정원4개로 구성돼 있다. 정원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쓰담쓰담정원의 활짝 핀 수크령이 양쪽에서 반긴다. 그 너머에는 무성한 그라스류 식물들이 늘어서 있고 한가운데에 붉은 꽃과 흰 꽃이 뒤섞여 피어있는 가우라가 미풍에 하늘거린다.

  ‘쓰담쓰담정원에서 몇 발자국 더 걷다 보면 보라색 색감이 가득한 멍하니정원이 나타난다. ‘‘honey’로도 발음되는 멍하니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달콤한 쉼이 되어주고자 정원을 구성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멍하니정원은 보라색을 테마로 해 꿀풀과 꼬리풀 종류의 식물들, 해국처럼 보라색 꽃이 피는 식물들로 주를 이룬다. 보라색 꽃들과 그라스류들이 한데 어우러져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은 보랏빛의 은은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옆에 자리한 풀의 마음이라는 뜻의 초심정원은 야생화와 들풀로 가득하다. 김장훈 정원사는 초심정원은 특히 정원 쪽 공부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초심자 교육생들이 모여 풀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고자 만든 정원이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왼편에는 SNS에서 포토존으로 입소문이 난 빨간 머리 앤의 사계정원이 자리한다. 동화 속 빨간 머리 앤이 성장과정이 감동을 주듯, 무르익어가는 정원의 모습에서 방문객들이 감동을 느끼도록 꾸몄다. 정원은 붉은색테마에 맞게 슈케라와 개키버들, 단풍나무 등을 심어 전체적으로 밝은 기운을 자아낸다.

  목요일에는 오소정원이라는 자그마한 나무팻말 너머로 웃음소리가 흘러넘친다. 바로 서울숲을 찾으며 지속적인 정원관리를 위해 봉사하는 시민정원사들이다. 햇빛이 강렬한 여름날에도, 그들은 2년 만에 꽃이 핀 말채나무에 기뻐하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바삐 호미질을 한다. 오소정원은 서울숲에서 시민 대상 가드닝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한 시민가드너들이 함께 조성한 실습정원이다. 쓰담쓰담정원의 경우, 2014년에 교육을 수료한 1기 수료생들이 정성스레 만들었다. ‘서울숲 시민가드너’ 1기 수료생이자 8년째 오소정원을 관리하는 조미정 시민정원사는 가드닝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민가드너에 도전했다. 외식업에 종사중인 그는 가드닝을 전문적으로 배워보면 회사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 2013년 봄 가드닝 공고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쉬는 날인 목요일마다 이곳을 찾아 정원을 가꾸고 있는데 정원 일은 현실의 걱정을 잊게 해준다고 전했다.

 

옛 유산의 흔적, 선유도공원

선유도공원에 도착하기 위해 건너야 하는 선유교의 모습
정수장의 구조물을 보존한 녹색기둥의 정원
한눈에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시간의 정원
시간의 정원 한쪽에 위치한 벽천

 예로부터 물을 건너서 어딘가로 가는 것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이 여겨져 왔어요. 대부분의 사찰은 물 위 다리를 건너 들어가게 돼 있죠. 속세의 찌든 때를 벗어버리고 다른 세계로 간다는 의식적인 행위인 거에요.”

  ‘선유도라는 섬에 조성된 공원인 만큼, 선유도공원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리를 거쳐야 한다. 양화한강공원을 가로지르는 성수하늘다리를 건너다 보면, 어느새 선유교라는 팻말이 보인다. 비 오는 날 선유교 한가운데에서 대기를 가득 메운 빗방울들과 낮게 깔린 구름을 배경으로 선유도를 바라보노라면, 과연 그 이름처럼 신선이 노닐 것만 같은 경치를 보여준다.

  선유도는 1978년부터 서울의 주요 수돗물 공급처인 정수장으로 위치해 있었다. 한강 위쪽으로 정수장들이 확장되면서 주요 정수장으로서의 기능이 약화하자, 선유도를 공원화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002년도에 개장된 선유도공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존의 구조물을 재활용해 만들어진 환경재생 생태공원이다. 선유도공원의 정중앙에 위치한 선유도이야기관의 뒤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30개의 기둥과 덩굴식물로 이뤄진 녹색기둥의 정원이 펼쳐진 모습이 눈에 띈다. 녹색기둥의 정원은 원래 상부가 덮여있는 수조와 같은 구조로, 정수장 직원들이 이용하던 테니스 코트와 사무실이 있던 공간이었다. 정영선 조경가는 정수장으로 이용되던 선유도의 기억을 남겨두기 위해서 자갈밭을 유지했고 기둥들도 철거하지 않고 정원의 요소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 자리한 수생식물원은 좌우로 나뉘어 각각 색다른 광경을 자랑하고 있다. 오른편에는 비교적 키가 큰 창포와 부들, 붓꽃 등이 심어져 있고 왼편에는 연, 수연의 연잎들이 물 위를 빽빽하게 덮고 있다. 이에 왼편에는 식물 위를 거닐며 수생식물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나무바닥길이 마련돼 있다.

  수생식물원을 지나 담쟁이가 가득 메운 콘크리트 벽면을 지나치면 선유도공원의 대표정원인 시간의 정원에 다다르게 된다. 정영선 조경가는 “‘시간의 정원이라는 이름은 날마다, 계절마다, 아래층과 위층을 오갈 때마다 색다른 감동을 주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시간의 정원은 골짜기 형태의 지형에 조성돼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정원을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가운데에는 나무바닥길이 마련돼 있어, 발 아래로 펼쳐진 정원이 한눈에 가득 담긴다. 한쪽 구석에는 세찬 물줄기가 쏟아지는 벽천도 있어 사시사철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벽천 부근에는 습기가 많고 축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물푸레나무, 산딸나무, 낙우송나무, 금낭화, 머위 등이 심어져 있다.

 

마지막 기억을 장식하다, 성모마리아정원

성모마리아정원에 조성된 자작나무 산책길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정원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다.
성모마리아정원의 성모자상
11년째 정원을 가꿔오고 있는 미소가득화초봉사단의 신현자 단장
침상에 누운 채 환자들이 정원과 하늘을 감상하고 있다.

  “지금도 몇몇 환자분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엄마품정원에서 하늘을 보며 임종을 하신 분, 친구분에게 이곳이 천국같다고 자랑하셨던 환자분, 정원에서 찍은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해달라고 하셨던 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이 보는 세상의 마지막 모습이 화사한 꽃이기를 바란다는 신현자 미소가득화초봉사단장은 10년째 매주 모현센터의 성모마리아정원에 봉사하러 간다.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모현센터는 호스피스 병원과 요양원을 운영해오다, 2020년 노인전문요양원으로 확대됐다. 모현센터 내에 자리한 성모마리아정원은 몸이 불편한 어르신과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생기와 활기를 되찾아주기 위해 만들었다. 정원 입구에 들어서면 양쪽 화단에 심어진 가우라, 블루버베인, 메밀 등의 꽃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보니또정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은 이 공간은 봄부터 가을까지 항상 새로운 꽃들이 피고 지며 계절별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면 기도의 뜰이 차분하고도 고요한 분위기를 풍긴다. 성모자상과 기도 의자가 놓여있고 그 뒤편에는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혼자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벤치가 따로 마련돼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생명의 잉태를 상징하는 하트모양의 건천이 있고 건천의 가장자리를 여러 수국이 장식하고 있다. 바로 오른쪽에는 네모난 공간의 엄마품정원이 보인다. 휠체어나 침상이 들어와 가족들과 오래 머물면서 대화도 하게끔 마련된 정원이다.

  또 건천을 둘러 걷다 보면 자작나무 숲길이 양쪽으로 환하게 펼쳐진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2019년에 조성된 자작나무 숲길은 환자들이 환한 나무 사이의 길을 산책하며 새소리를 듣고, 낮은 돌담과 자작나무의 촉감을 느끼며 정원과 교감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억의정원’, ‘천상의뜰부터 500여 명의 은인들의 후원을 받아 조성된 기부 정원인 만큼, 이를 기리는 은인의뜰도 마련돼있다.

  2011년부터 모현센터의 성모마리아정원 조성을 주도하고 관리해온 신현자 단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정원을 가꿔 나가는데 힘쓸 생각이다. “15년 동안의 정원봉사 활동을 하며 오히려 저 자신이 위로를 많이 받았고 행복했어요. 정원 일은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었지요.”

  

  취재 중 만난 이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정원을 돌보며 애쓰고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땀방울은 한 조각의 땅을 돌보는 일이 곧 커다란 지구 정원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작고도 큰 움직임이라는 것을 차분히 주장했다.

  오늘날 도심 속 공공정원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방치된 땅을 정원으로 탈바꿈해, 버려진 도시를 재생하는 공동 가드닝 문화확대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조경진 교수는 현대 정원 문화는 도시경관의 회복에도 효과적일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협력,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도시 정원과 가드닝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정원이 오랜 시간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도시민들의 정성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정우건 조경가는 공공정원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원봉사처럼 참여해 모종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면서 진짜 정원을 느끼고 향유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다원 기자 wondaful@

사진김예락, 강동우, 문도경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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