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메타버스의 시대, 이음의 공간으로의 대학
[탁류세평] 메타버스의 시대, 이음의 공간으로의 대학
  • 고대신문
  • 승인 2021.11.0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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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문과대 교수·사회학과
신은경 문과대 교수·사회학과

  비대면 생활이 길어지면서 ‘메타버스(met averse)’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뜨겁다. 메타버스는 기존의 가상현실 기술을 넘어,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한 증강 현실로 디지털 공간과 현실계의 접합을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메타버스는 기업, 교육, 국방, 의료 등으로 그 적용 영역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초 미 육군과 27.7조 원 규모의 증강 현실 헤드셋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페이스북은 최근 메타로 사명을 바꾸고 가상공간에 대한 공격적 도전을 선포했다.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는 가상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전혀 다른 차원과 공간으로 확장되는 변곡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에서도 비대면 수업이 시작된 지 벌써 4학기째다. 그래도 학생들은 여전히 입학하고, 수업을 듣고, 졸업한다. 행정적으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대학은 비대면 전환에도 지식과 기술을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수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하지만 오감으로 느껴지는 대학 공간은 전과 확연히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대자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학기 첫날, 정대 후문을 들어서며 생경한 장면에 발걸음을 멈췄다. 정대 후문 게시판을 채우던 대자보가 단 하나도 붙어있지 않았다. 학생 자치회들이 원활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징후일 터이다. 대자보 없이 개강 첫날을 맞았던 날이 있던가. 시절이 하 수상하여도 학생들은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고, 연서명을 통해 함께 성토할 벗들이 있었다. 대학은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과 애정을 쏟는 곳이었다. 비대면 전향 이후, 다양한 가치관들이 빼곡히 얼굴을 내밀며 한 학기의 시작을 알리던 그 익숙한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아는 선배’가 없다는 학생들의 하소연도 뼈아프다. 아는 선배가 없다는 것은 아는 후배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은 앞서가는 선배가 뒤에 오는 후배의 손을 잡아 이끌면서 비로소 깨우치는 일련의 연쇄반응의 공간이다. ‘가르치다’라는 동사를 통해서 우리는 크게 배운다. ‘도와주다’라는 동사를 통해 우리는 크게 얻는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건강한 상호작용은 사람을 키우고 사회를 발전시킨다.

  대학은 이음의 공간이다. 대학은 스승과 제자를, 선배와 후배를, 동기와 동기를 만나게 하고 연결한다. 대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다른 생애주기에 비해 양적으로 풍성하고 질적으로 다양하다. 대학에서의 배움은 지식의 습득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와 성장 환경, 가치관, 전공, 그리고 꿈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느껴지는 가벼운 불편과 긴장, 그 속에서 관점과 경험의 지경이 넓어진다. 서로 다름이 공존하고 부딪히며 구성원 간의 융합이 생겨난다. 대학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나면, 사람에 대한 이런 뜨거운 경험은 쉬이 하기 어려워진다.

  과연 증강 현실 기술로 무장한 메타버스의 탄생이 ‘관계의 유실’이라는 캠퍼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더 실감나는 증강 현실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필자는 흔쾌히,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겠다.

  메타버스가 물리적 경험을 아주 그럴듯하게 재현하더라도, 인간의 세밀하고 다층적인 연결의 경험까지 그대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아바타의 식탁 위에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다고 하더라도, 내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지금 손안에 있는 푸석거리는 빵 한 조각이다. ‘방구석 1열’에서 BTS 공연을 독점하는 것보다, 공연장 저 끝자리에서라도 공연의 열기를 느끼는 것이 우리의 심장을 더 크게 뛰게 한다. 유명 온라인 강의를 수만 명과 함께 듣는다고 해서 그 공간의 개인들과 연대감이나 정서적 애착을 느끼지는 않는다. 유튜브에서 같은 채널을 구독한다고 해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온라인 교육 서비스 공간의 이용자는 결국 소비자일 뿐이다.

  대학에서 학생은 주인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차곡차곡 학점을 채워 졸업을 취득하게 해주는 제도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존재해서도 안 된다. 학생이 다양한 연구자, 교수자, 동료 , 선배, 후배들을 만나 촘촘한 관계의 그 물망을 넓혀나가는 공간이다. 그런 과정에 삶의 풍요를 키워나갈 기회를 얻는 것은 학생들이 가진 고유의 권리이다. 비대면 경험 공유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지라도, 여전히 학생들이 관계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바로 이곳, 대학 캠퍼스다. 학생들 스스로가 ‘편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리를 쉽게 놓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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