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본지 여론 코너에서 기획됐던 ‘교수님은 스무 살’은 본교 교수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담는 코너다.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하는 스무 살의 풍광은 낯섦과 동시에 설렘을 가져다 준다. 저마다 겪는 시대는 다를지언정, 누 구에게나 뜨거웠던 스무 살의 기억이 있다. 2020년 ‘교수님은 스무 살’ 코너에 기고했던 김순남(문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안준용(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교수를 다시 만나 그 시절 스무 살의 이야기를 물었다.


설렘과 혼란 사이의 스무 살

고전 강독은 방황의 돌파구

“각자 역할에 충실한 삶 중요”

 

김순남 교수의 20대 모습

  김순남(문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에게 스무 살이란 시리도록 찬란했던 시절이다. 1986년 새내기 시절, 새롭게 마주하는 환경에서 겪는 혼란은 삶의 주체성을 고민하게 했다. 공자와 맹자의 고전(古典), 동기들과의 치열한 난상 토론, 밤새 이어지던 술자리같이 그 시절을 조각처럼 이루던 기억은 스스로 두 발로 온전히 설 수 있게 해 준토대가 됐다. 김순남 교수를 만나 스무 살의 기억을 물었다.

 

  - 재학 시절 인상 깊은 추억이 있다면

  “사학과 학생들은 교수님을 모시고 봄가을로 유적지를 탐방했습니다. 각자 강렬한 개성을 발휘하는 동기들 덕분에 답사는 늘 흥미롭고 즐거웠어요. 지금도 멍게를 먹을 때면 3월의 통영 답사가 생각납니다. 밤새도록 이어진 술자리의 다음 날, 교수님의 독촉에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듣기에도 민망한 전승 가요를 항상 흥얼거리던 옆자리의 동기는 오렌지색 멍게 한 점을 저에게 집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물컹한 식감을 싫어했기 때문에 멍게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한 점으로 저는 멍게 맛을 알게 됐어요. 초봄의 멍게는 쌉쌀하지만 너무나 상큼했습니다. 그 동기에겐 사소한 기억이겠지만, 저는 그때의 강렬했던 멍게 때문에 지금도 3월이 되면 통영이 그립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19861학기에 수강했던 서양고대사의 중간고사 답안을 엉뚱하게 작성해 제출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저는 시험 주간이었음에도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생, 특히 고대생이 되었다는 기쁨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여전히 술독에 빠져 있었습니다. 전날 숙취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당일 가까스로 시험장에 도착했습니다. 답안에 겨우 첫 문단을 미진하게 공부한 내용을 쓰고 나니 더는 쓸 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공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고려대학교 교가 1절과 2절을 답안의 본문으로 작성했습니다.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 있다.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결국 그 과목에선 ‘D’를 받았죠. 지금도 애써 가르쳐주신 교수님께 동문서답식 답안을 제출한 이 일이 여전히 죄송스럽습니다.”

 

  - 스무 살이 된다면 하고 싶은 일은

  “제가 다시 스무 살의 새내기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한다면, 주저 없이 응원단에 지원할 거예요. 10년 전, 가을 강의를 마치고 교양관을 나오던 저는 학생회관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응원곡들이 연이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죠. 흥겨운 리듬에 노래하고 춤을 추는 청춘들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저도 내적으로는 이미 팔을 머리 위로 뻗어 올려 석탑을 가리키고 어깨를 힘껏 들썩여 배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속으로 흥얼거리며 저들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응원단원으로서 활약해 볼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항상 남는다지만, 다시 스무 살의 새내기가 된다면 경험해보지 못한 응원단원으로 활약하면서 내면의 열정을 한껏 분출해보고 싶습니다.

  만약 80년대가 아닌 2022년에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고려대학교 코로나 극복의 역사를 기록하는 동아리를 만들 것 같아요. 조선 역사에서도 극복의 예를 찾을 수 있듯, 우리 학생들을 포함한 시민 사회 전체가 함께 고생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학우들과 동아리를 결성해 살아있는 역사로서 생생한 코로나 투병기를 구술사로 엮어보면 굉장히 뜻깊을 것 같아요.”

 

  - 본교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새내기 때 그토록 소망하던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으니 앞으로는 하늘 끝이라도 닿을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실상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 인생의 방향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스무 살의 방황은 아름답다지만 정작 저는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가 동양의 고전이었습니다<논어><맹자>를 선택해 강독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각자 맡은 부분을 공부해 아치라는 카페에 모였습니다. 한 사람의 주도로 읽고 해석을 하다가 함께 몇 시간이고 난상 토론을 하곤 했어요. 그 가운데에서 저는 공맹지도(孔孟之道)의 요체가 수신(修身), 스스로를 닦는 것에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저의 생각과 판단, 행동만이 흔들리는 저를 바로 세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부여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저의 좌우명은 나나 잘하자입니다. 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의 탓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남 탓만 한다면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살아가라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죠. 우리 학생들에게도 역시 같은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나 잘하자!’라고.”

  “여러분의 선생으로서 미래 세대의 주역이 될 우리 학생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단하세요. 그다음으론 해야 한다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판단하셔야 합니다. 이 판단은 꼭 자신의 의지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스스로 판단해서 해야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했다면, 한번 궁극의 경지까지 진력해보세요. 공부든, 사랑이든, 노래든, 춤이든!”

 
글 | 이주은 문화부장 two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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