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에 따르면, 대학 재학생의 폭력예방교육 이수율 전국 평균치는 2019년 43%, 2020년 42.6%다. 정부와 학교가 나서 폭력예방교육을 법정의무교육으로 실시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낮은 수치라 할 수 있다. 본교 재학생의 ‘인권과 성평등’ 이수율 역시 54%에 그쳤다(2021년 기준). 학생들이 교육을 이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 대학의 폭력예방교육이 가지는 한계와 앞으로의 인권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필수강의인데, 학생들 “잘 몰라”

“현 교육에 새로운 정보 없어”

올해부터 자체 콘텐츠 제공 예정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다.” 본교 ‘인권과 성평등’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주된 평가였다. 질 높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한 학교의 노력에도 불만은 남아 있다. 학생들은 교육에 대한 안내 부족, 일방적인 강의식 교육, 학내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 등을 지적했다. 인권·성평등센터는 “올해부터는 새로운 콘텐츠 제공을 계획 중”이라 전했다.

 

  교육 안내 부족해 혼란 겪기도

  지난해 ‘인권과 성평등’의 수강기간은 12월까지였지만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의 요구로 1월부터 2월까지 약 한 달간 수강 기간이 연장됐다. 이런 일은 매년 반복된다. 본교 인권·성평등센터 노정민 과장은 “정해진 수강 기간이 종료되고 나면 졸업을 앞두고 있는 등 절박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문의한다”고 밝혔다.

  ‘인권과 성평등’ 강의는 본교 졸업 필수요건임에도 학생들은 해당 교육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박다원(문과대 영문20) 씨는 “작년에는 수강 마감 기한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마감 2시간 전에 PC방에서 급하게 강의를 들었다”고 말했다. 안내가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학생들은 ‘인권과 성평등’ 강의 자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인권과 성평등 어떻게 수강하나요?’, ‘기한은 언제까지인가요?’, ‘휴학해도 들어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생들이 교육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이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본교는 포털 공지사항과 블랙보드 안내페이지를 통해서만 의무교육을 안내하고 있다. 공지를 일부러 찾지 않으면 정보를 얻기 어렵다. 노정민 과장은 “별도의 안내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생들에게 홈페이지를 자주 확인해달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전했다.

  재학생의 폭력예방교육 이수율이 70%가 넘고, 교직원의 이수율이 80~90%대인(2020년 기준) 한양대의 사례를 살펴보면 주기적인 교육 안내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양대는 포털 로그인 시 미이수자 알림 팝업창이 뜨면서 학내 구성원의 교육 참여를 유도한다. 한양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폭력예방교육 이수 의무 제도화, 참여 독려 메일 발송 등 다양한 방책 중에서도 미이수자 팝업창 실행의 효과가 가장 컸다”고 밝혔다.

 

  일방적인 강의에 학생들 불만족

  ‘인권과 성평등’ 교육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점 역시 한계로 지적됐다. 조유나(문과대 불문20) 씨는 “온라인 교육이라 시청이 강제되지 않는다”며 “제대로 듣지 않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박다원 씨 역시 “강의를 듣지 않아도 퀴즈를 모두 풀 수 있어 현 수강 확인 방식은 무의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권·성평등센터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학생들이 강의를 제대로 수강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인권과 성평등’ 수강 시 강의를 배속 재생한다면 관리 시스템이 인식하지 못해 교육 이수를 완료할 수 없다. 노정민 과장은 “학생들이 교육을 이수하는 과정은 모두 트래킹 된다”며 “필요한 경우에는 개인의 교육 이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유나 씨는 “학내 커뮤니티를 보면 제대로 된 인권 의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이수’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교육을 듣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학생들의 인권의식 향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이 학내 구성원에게 일괄적으로 제공되다 보니 일방적인 강의식 교육에 그친다는 한계도 있다. 김정윤(문과대 사회19) 씨는 “강의 형식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준혁(미디어18) 씨는 “단순히 몇 개의 강의를 듣게 하는 것보다 학기 중에 지속해서 수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교육 방식을 다듬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주영(서울대 인권센터) 교수는 학내 구성원의 직접 참여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어떤 상황을 목격했을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인가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학 인권교육이 필요하다”며 “참여자들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진원(대학정책연구원) 교수 역시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학생들과 토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대학 인권교육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 아는 내용’에 흥미 떨어져

  본교 ‘인권과 성평등’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최원재(문과대 한국사20) 씨는 “어릴 때부터 들었던 교육이 반복되는 느낌”이라며 “다 알고 있는 내용에 형식도 유사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황준혁 씨 역시 “대학생의 인권인식은 높아졌음에도 교육 내용이 중고등학생 때와 큰 차이가 없다”며 “장애인권이나 이주민·외국인에 대한 인식, 온라인 혐오 표현, 사회·문화적 다양성 분야 등 캠퍼스 내에서 주의하고 숙지해야 할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정의무교육인 ‘폭력예방교육’은 매년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폭력예방교육 운영안내’를 토대로 한다. ‘폭력예방교육 운영안내’는 교육의 필수 내용과 함께 교육 실시와 관련된 세부 사항 등을 담고 있다. 교육기관이 이를 바탕으로 매년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하다. 재정적 한계로 인해 본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매년 새롭게 제작하는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구입하고 있다.

  노정민 과장은 “정부가 의무로 지정한 교육인 만큼 정부 측에서 ‘교과서’라고 부를 만한 기본적인 콘텐츠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교육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도 주 교재가 있어야 내용을 보충해서 질 높은 교육을 마련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권익기반과 관계자는 “3년 주기로 법정 의무 교육 대상자들에게 표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며 “범죄 유형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른 추가 콘텐츠도 매년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교육 대상자가 공무원, 초·중·고 학생, 대학생 등으로 다양하다 보니 ‘대학’에 초점을 두고 있는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자체 콘텐츠로 실효성 확보 노력

  본교 인권센터는 올해부터 ‘인권과 성평등’ 강의에서 학교의 자체 제작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4단계 BK21사업에 선정돼 재정 지원을 받게 됐다. 교육 대상을 세분화해 좀 더 실효성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노정민 과장은 “교육 대상에 따라 현실적으로 와닿는 내용이 다를 것”이라며 “교직원에게 제공되는 교육에는 가정폭력 이슈를 더 강조하고, 재학생에게 제공되는 교육에는 데이트폭력 이슈를 더 강조했다”고 말했다.

 

왼쪽은 2021년 ‘인권과 성평등’ 교육, 오른쪽은 2022년 ‘인권과 성평등’ 교육 중 한 장면이다. 본교 인권센터는 올해부터 교육 대상을 세분화해 자체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자체 콘텐츠를 통해 수강 기한도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노 과장은 “기록을 통해 교육 이수율을 집계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지난해까지 타 대학의 교육 자료를 사용했기에 계약 기간이 끝나는 12월에 교육 제공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자체 콘텐츠를 도입함으로써 앞으로는 좀 더 자율적으로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 | 엄선영 기자 select@

사진제공 | 고려대학교 인권·성평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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