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동화와 방정환 일생 전시해

역사 속 아이들의 삶이 담긴 문학

“동화의 다양한 가치 강조되길”

 

  “내 호가 왜 소파(小波)인지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 물결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오.” 방정환이 그의 부인에게 남긴 말이다.

  1922년 5월 1일 처음 선포된 어린이날이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한 ‘어린이날 100주년, 한국동화 100년’ 전시가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오는 26일까지 진행된다. 대교당 앞마당에서는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동화의 시대별 흐름이, 내부에서는 어린이 운동의 전개 과정이 전시됐다. 앞마당엔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체험 공간에선 전통놀이인 투호와 땅따먹기를 할 수 있고 기억에 남는 동화 구절을 쓰거나 그림도 그려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인숙 어린이도서연구회 상임이사는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정신을 되새기고 동화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체험 공간에서 기억에 남는 동화 구절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혼돈의 시대 속 아이의 시선을 담다

  전시회장 야외 입구엔 푸른 나무를 따라 시대별 동화 작품들이 소개됐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동화들과 함께 국내 어린이문학의 첫걸음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시는 시작된다.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소년운동이 전개되며 다양한 어린이 잡지가 등장했다. 전시 입구에선 1923년 창간된 방정환의 <어린이>를 시작으로 <신소년>, <별나라>, <아이생활> 등 창작동화 발전의 밑거름이 된 어린이 잡지들을 볼 수 있다. 그 옆엔 한국 창작동화의 태동을 이끈 1920년대 작품 마해송의 <바위나리와 아기별>, 방정환의 <만년샤쓰>, <칠칠단의 비밀> 등이 함께 전시됐다. 전시 작품들은 아이들이 현장에서 읽어볼 수 있다. 김인숙 상임이사는 “<칠칠단의 비밀>은 1926년에 나온 탐정 소설이지만, 요즘 아이들이 읽어도 ‘심장이 쫄깃쫄깃해요’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1930년대에 들어 어린이들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삶의 주체로 인식됐다. 전시회 속 이주홍의 <청어뼈다귀>, 김동성의 <엄마 마중> 등의 동화에서 이러한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청어뼈다귀>엔 아이의 시선으로 담긴 당시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이주홍은 가난한 소작농의 삶을 보여주며 동화 속에 사회제도의 불평등과 분노를 담았다.

  1940년 일제강점기 말기로 들어서며 조선은 최소한의 문화 활동조차 금지됐다. 광복 이후가 돼서야 동화 출판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 전쟁과 극단적 이념 대립으로 혼란스러운 사회에서도 현덕의 <삼형제 토끼>, 마해송의 <떡배 단배> 등 많은 작품이 나오며 동화의 명맥을 이어갔다.

 

아버지와 아들이 전시회에 배치된 동화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소재 다양화로 발전하는 한국동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공교육에 맞서 문학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이원수와 이오덕이 각각 비평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이오덕 교육운동가는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통해 아이들의 삶과 현실이 문학에 담겨야 한다고 강조하며 어린이를 순수한 천사로만 대상화하는 동심천사주의를 비판했다. 전시회에 배치된 이원수와 이오덕의 평론집은 동화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도왔다. 1980년 5월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출범하며 한국동화의 창작과 출판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전시에선 1980년대 한국 어린이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권정생의 <강아지똥>, <몽실언니>, <바닷가 아이들> 등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어린이문학은 동화 작가들의 참신한 기획과 개성이 담기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닭>부터 최영희의 SF 동화인 <알렙이 알렙에게> 등 수십 편의 현대 동화도 대교당 앞마당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여전히 울림 주는 소파의 목소리

  대교당의 내부에는 소파 방정환의 일생과 소년운동의 전개 과정이 전시돼 있다. 46컷의 그림이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생애를 보여준다. 1921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를 창립한 방정환은 이듬해 창립 1주년을 어린이의 날로 선포했다. 다음날 동아일보에 실린 어린이날 선전문에는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장가와 시집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와 같이 어린이의 권리를 위한 방정환의 목소리가 담겼다. 어린이의 인권을 위해 힘쓰던 방정환은 이번 전시회가 열린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던 중 쓰러졌다. 그는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말을 남기며 1931년 7월 23일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전시와 함께 배치된 ‘방정환 말꽃모음’에는 어린이와 관련된 그의 어록을 볼 수 있다. 1928년 5월 8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말에서도 어린이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 드러난다. “우리의 어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입니다. 어른보다 10년, 20년 새로운 세상을 지어낼 새 밑천을 가졌을망정 결단코 어른들의 주머니 속 물건만 될 까닭이 없습니다.”

  전시회와 함께 ‘방정환 이야기 극장’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빔프로젝터를 통한 슬라이드 그림과 함께 <시골 쥐의 서울 구경>을 실감 나게 구연했다. 시골 쥐가 사람들에게 들켜 부리나케 도망가는 장면엔 박진감 넘치는 배경음악이 함께 나오기도 하며 흥미를 높였다. 공연을 보는 아이들은 손에 진땀을 흘리기도, 환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어지는 ‘이야기 들려주기’ 공연에선 천도교 중앙대교당 무대 위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방정환을 되새겨보게 한다. 1920년대의 방정환처럼, 동화구연자는 어린이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교당 내부에서는 슬라이드 연극이 한창이다.

 

  어린이들의 가슴에 물결을 일으킨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들은 실제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 세상에서 훌륭히 경험한다”고 말했다. 동화는 어린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 창구이자 세상을 보는 눈이다. 김인숙 상임이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동화가 그저 하찮은 글이 아닌, 예술성과 교육성 등 다양한 가치를 지닌 문학 양식이라는 점이 강조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시회를 나가는 길에 놓인 방명록에는 아이들의 개성 넘치는 글씨로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시를 본 후 소감을 그림판에 남겨본 ‘작품 공작소’ 공간엔 “아이를 너무 쉽게 보지 마요”라는 글이 어린이의 글씨로 적혀 있었다. 세상 모든 어린이가 행복하게 동화를 읽을 때까지 소파 방정환의 물결은 계속 퍼져 간다.

 

아이들은 개성있는 글씨로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다.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 | 강동우 기자 elli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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