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미투>는 지난 2017년 이후 한국과 세계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 이후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영화로 지난 2021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소개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영화다. 스쿨 미투, 성폭력 트라우마, 문화예술계 성평등 실천,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젠더 이슈에 대한 독립적 스타일의 작품들을 연결하고, 영화의 시작과 끝에 한국사회 성평등 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붙여두었다.

  <여고괴담>(박소현)은 노원구 한 여고의 스쿨 미투의 기록과 증언을 되짚어본다. 그것은 2018년 불현듯 솟아난 것이 아니라 오랜 방치와 억압의 역사를 지닌 사건으로 기억된다. 영화는 특이하게도 촬영보다는 기록물들을 통한 콜라주로 구성되어 있다. 감독은 흑백의 해상도 낮은 사진과 인쇄물의 불확실한 이미지들의 기이함 속에서 남겨진 감정의 잔해들을 헤집는다. 초승달이 만월이 되기까지 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온전한 경청과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작품은 어떤 시적 경험을 펼쳐내는 데 도달한다.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이솜이)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를 따라간다. 어린 시절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친족 성폭행으로 추정되는 사건으로 몸과 마음이 아픈 노동자-아줌마-씩씩하고 남자 같은 사람-중년의 이혼녀인 여성은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말을 하루에 100번씩 노트에 쓴다. 그러한 꾸준한 시도 없이 삶을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하기는 거칠고 황량한 들과 밭과 해변에 공허하게 산화되는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너를 고발한다’에 앞서 ‘나는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외침이다.

  <이후의 시간>(강유가람)은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미술,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인 미투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했던 예술가이자 활동가들의 현재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막힌 둑이 터지듯 분출된 미투 운동에 연대했던 예술가들은 창작을 잠시 유예하고 활동가로서 많은 사건들에 개입해왔다. 이른바 ‘쌩 의지’로 뛰어들었으나 넘치는 사건들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했고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감과 고통을 수반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사회가 공적 책임을 방기해왔던 문화예술인들의 정체성 고민을 영화는 꼼꼼히 살피며 지속 가능한 운동과 삶의 공존 가능성을 탐문해본다.

  <그레이 섹스>(소람)는 애니메이션과 인터뷰로 구성된 작품이다. 인터뷰이들은 사적 연애, 원나잇, 매칭 어플을 통한 데이트의 경험 속에서 과연 나는 내가 원하는 섹스를 해왔는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가해와 피해라는 이분법으로 분류하기 애매한 사태들 속에 침전된 불쾌감, 자존감의 훼손, 미시적 억압이라는 미묘한 경험들은 판단 불가능한 회색지대에 놓여있다. 영화는 이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며 사적 내밀함의 영역에 잠재되어 온 그녀들의 민감한 체험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 낸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사건의 여파 속에 서 보이지 않는 얼굴로 보이지 않는 대상들에게 ‘말하기’를 지속하는 자들의 목소리들이 있다. 영화 <애프터 미투>에 등장하는 자들은 목소리를 지녔지만 대개 아직은 이름이 공개될 수 없는 혹은 여전히 이름이 불리지 못한 자들이다. ‘이름의 인류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실뱅 라자뤼스는 역사와 철학을 넘어선 정치적 개별성을 식별하는 장소를 제안하였다. 이름이 역사와 철학에 의해 축출당한 그 무엇이라면, 명명될 수 없는 그 이름에 우리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경험한 미시-정치적 시퀀스들을 통해서이고, 영화 <애프터 미투>의 네 에피소드는 그 경험들의 시퀀스를 펼쳐내 보인다. 장면들을 봉합하여 의미를 구성하고 그 고민을 이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송효정 영화평론가·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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