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풍경과 셀카도 찍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 아쉬움을 달래고 싶어 지난 여정을 떠올려 봤다. 그런데 직접 본 장면보다 휴대전화 스크린 속 풍경이 먼저 떠올랐다. SNS에 올린 사진과 글이 기억 속의 여운보다 더 선명했다. ‘남는 건 사진뿐’이었던 걸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딜 가든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사진에 관한 관심이 늘어날수록 여러 구도에 도전하며 촬영에 시간을 더 많이 들였다. 셔터를 누르다 한 곳에서 몇십 분을 머무른 적도 있다. 점점 뷰파인더 속을 바라보는 시간은 길어지고 화면 밖을 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뷰파인더 밖의 순간을 누리지 못한 채 남긴 사진은 그때의 시간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순간을 담는 사진도 조금씩 매력을 잃었다.

  개강 전 떠난 부산 여행에선 필름 카메라를 들었다. 처음엔 하나하나 줄어드는 필름 장수를 헤아리며 여행 끝 무렵엔 필름이 모자랄까 걱정했다. 그래서 필요한 순간에만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었다. 적어진 장수에 따라 사진을 찍는 시간도 짧아졌다. 자연스레 남은 시간은 바다의 윤슬을 보고 파도 소리도 들으며 보냈다. 해 질 녘의 광안대교, 북적북적한 야시장 등 부산에서의 매 순간이 인상 깊게 남았다. 지금도 현상한 사진을 보면 이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서울에서 생활이 답답해질 때면 부산에서의 추억을 꺼내 회상하곤 한다.

  필름 카메라는 나에게 여유를 지니고 사진을 찍는 법을 알려줬다. 잘 찍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지만, 공간의 분위기를 향유하며 욕심을 채울 수 있었다. 이제는 사진으로나 기억으로나 그 순간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요즘 길을 걸으면 싱그러운 여름을 자주 마주한다. 푸릇푸릇한 나무와 하늘이 만드는 정경은 걸음걸음을 가뿐하게 만든다. 이런 아름다운 장면은 사진으로 남기지 않곤 못 배긴다. 그 시간과 정서를 느끼도록 오늘도 느슨하게 셔터를 누른다.

 

문도경 기자 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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