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트 러쉬
<어거스트 러쉬>

별점: ★★★★★

한 줄 평: 촛불만큼 뜨겁게 기타 줄을 튕기는 소년의 이야기


 

  저는 구불구불한 인생 그래프를 믿는 편입니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절망이 있다면 행복도 있죠. 물론 감정을 느낄 당시에는 이후에 열릴 전혀 다른 색깔의 문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 열한 살의 나이에 슬픔 속에서 기쁨을 떠올릴 줄 아는 소년이 있습니다. <어거스트 러쉬>의 에반 테일러입니다. 보육원에서 11년간 자란 에반 테일러는 그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합니다. 에반 테일러에게 음악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승차권이었고, 자신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 주는 봄바람이었습니다. 어떤 고난이 닥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잡아 주는 단단한 심지이기도 했죠. 보육원을 나와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치고, ‘어거스트 러쉬’라는 새로운 이름도 얻습니다. 그가 자신을 옭아매던 앵벌이 음악 소굴을 박차고 나가서 자신을 낳아 준 부모님을 만나게 된 건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좇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제가 어렸을 때 본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며 두고두고 찾아보게 되는 건 아마도 음악에 흠뻑 젖어든 채 행복에 겨운 어거스트 러쉬의 표정들을 동경했기 때문일 겁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기타를 튕기는 어거스트 러쉬의 모습은 사람이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외쳤습니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고통을 몇 번이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왜일까요? 자기 삶을 받치는 굳건한 심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죠. 자신의 인생에서 한 발짝 떨어져 찬찬히 살펴봅시다. 얼굴 위로 행복에 겨운 당신의 표정이 떠오르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심지’는 무엇인가요? 꼭 숙명 같은 것이 아니어도, 남들이 대단하다 여기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내게 중요한 것을 포기할 수는 없지요. 만약 자신의 심지에 선뜻 불을 붙일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에반 테일러’가 음악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며 ‘어거스트 러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지 않으실래요?

 

이채령(문과대 국문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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