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 재현 양상 두드러져

<말아톤> 이후 인식 변화 생겨

“시청자의 모순적 태도 아쉬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장애를 가졌지만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사랑스러운 등장인물과 따뜻한 스토리를 선보이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주인공 캐릭터 ‘우영우’는 기존에 미디어가 만들어오던 발달 장애인 이미지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애인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현실을 반영하듯,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극적 장치로 이용되곤 했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은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드라마에 등장한 장애인 캐릭터는 조연이 73%에 달했다”고 말했다. 

  영화 <오아시스>와 <말아톤>, <나의 특별한 형제>, 드라마 <굿닥터> 등은 장애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시도를 통해 장애인이 받는 차별을 보여줬다. 김세령(호서대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주변인으로만 등장했던 장애인이 직업인으로 다뤄진다는 것은 장애인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담아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동정의 시선은 비장애인에게도 부담 

  미디어에서 장애인은 극복해야 할 병을 앓거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자폐성 장애인 ‘오진태’는 가족들의 보호를 받아 꿈을 이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자문을 맡았던 김병건(나사렛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장애인을 자립이 어려운 존재로 보여주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며 비장애인들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부담감과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왜곡된 동정의 시선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동반 성장 서사 드라마나 영화가 제작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영우가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거나 동료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한 에피소드에서 우영우는 낙하산으로 입사하기를 원치 않아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 한다. 김세령 교수는 “우영우처럼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도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지는 않다”며 “해당 드라마에는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같이 성장해나가는 모습도 드러난다”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상징적 장애 이미지로 편견 재생산 

  미디어에서 다양한 장애인을 보여주지 않다 보니 새로운 편견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자폐성 장애인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인물을 다룬 작품이 많다. 의사소통 능력은 높지 않지만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말아톤>, <굿닥터>, <그것만이 내 세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두 이에 해당한다. 미디어의 이러한 재현 양상은 자폐 스펙트럼과 서번트 증후군이 동일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미디어를 통해 그린 이미지가 장애인의 정형이 된다. 남세현(한신대 재활상담학과) 교수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장애인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고기능 자폐인을 자주 그리는 것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자폐 예술인 자녀를 둔 임은화(여·52) 씨는 “가족도 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장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중증 장애인이 다가간다면 반감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처럼 비장애인과 융화될 수 있는 장애인들을 먼저 보여준 후 서서히 다른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배우 위한 발판 필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장애인 배우가 직접 배역을 맡아 연기하며 화제가 됐다. 다운 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배우와 청각 장애인 이소별 배우가 출연해 장애인의 특징을 왜곡 없이 나타냈다. 남세현 교수는 “비장애인이 주도권을 쥐고 장애인에게 억압과 차별을 가하는 세상에서 이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을 1960년대 미국 상황에 빗대어 “백인이 분장을 한 채 흑인을 연기했던 것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운 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배우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영희 역을 맡았다.
다운 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배우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영희 역을 맡았다.

  그러나 당장 모든 배역을 장애인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발달 장애인이 배우가 되기 어려운 환경 탓이다. 방귀희 회장은 “정은혜 배우는 어렸을 때부터 독립영화에 출연했던 경력이 있었다”며 “장애인 배우를 발굴해 교육하고 작은 배역부터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장애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임은화 씨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자폐성 장애인의 상동 행동이 정확히 묘사됐다”며 “이를 통해 자폐인의 행동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전했다. 차별 재생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김병건 교수는 “의견의 상충은 사회적, 개인적 논의를 통해 장애인 인식이 달라지는 과정”이라 말했다. 실제로 <말아톤>의 흥행 성공 후 영화 이름을 딴 ‘말아톤 복지재단’이 설립되는 등 미디어가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영화 '말아톤'이 흥행에 성공하자 말아톤 복지재단이 설립돼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 '말아톤'이 흥행에 성공하자 말아톤 복지재단이 설립돼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남세현 교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처럼 비장애인의 기본권 요구는 억압하면서, 장애인을 사랑스럽게 그리는 드라마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순적 태도는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가 이러한 현실을 꼬집어준다면 장애인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여러 뇌 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기억, 암산, 퍼즐, 음악 등 특정 부분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증후군  

 

글 | 성정윤 기자 chocopie@  

이미지 출처 | ENA, 네이버 영화,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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